黃帝陰符經注(唐 張果)
황제음부경주(당 장과)
* 장과(張果) : 唐현종(재위/712-756)때의 신선(唐八仙),'장과로'(張果老)라고 존칭하여 부름.
黃帝陰符經敘 : 황제음부경서
《陰符》自黃帝有之,蓋聖人體天用道之機也。
음부(陰符)는 황제로부터 있었으니,대개가 하늘이 쓰는 도(道)의 기틀을 체득하는 것이다.
《經》曰:得機者萬變而愈盛,以至於王;失機者萬變而愈衰,以至於亡。厥後伊呂得其末分,猶足以拯生靈,況聖人乎?其文簡,其義玄。
경(經)에 이르기를 : 도(道)의 기틀을 얻은자는 만가지가 변화가 점점더 성하고,이로써 王(으뜸)에 이르게되고 : 도의 기틀을 잃어 버린자는 만가지가 변화하여 점점 더 쇠퇴하니,이로써 亡(죽음)에 이르게 된다.그 후예인 이윤(伊尹)과 여상(呂尙/강태공)은 그것을 인생의 끝트머리에서 얻었으나,여전히 백성들을 구제하기에 족하였으니,하물며 성인(聖人)이 되는 것이겠는가? 그 문장은 간결하고,그 뜻은 깊도다
凡有先聖數家註解,互相隱顯。後學難精,雖有所主者,若登天無階耳。近代李筌,假托妖巫,妄為注述,徒參人事,殊紊至源。不慚窺管之微,輒呈酌海之見。使小人竊窺,自謂得天機也。悲哉!臣固愚昧,嘗謂不然。
무릇 먼저의 성인께서 몇번의 주해가 있었으나,서로 은밀하게 드러내었다. 후학들은 정통하기가 어려우니,설사 어느정도 견해가 있는자라도,하늘에 오르고자 하나 길이 없는것과 같을 뿐이다. 근대의 이전(李筌,당현종때사람)은,요무(妖巫)한것을 가탁하여,망령되이 주(注)를 술(述)하여,공연히 패거리들이 인사에 참여하고,남다르게 지극한 근원을 문란케하였다. 대롱으로 살피는 것같은 좁은 소견을 부끄러워하지 않고,늘 표주박으로 바다를 퍼내는 좁은 견해를 드러냈다. 소인들로 하여금 몰래 훔쳐보게하고,스스로 말하기를 천기를 얻었다했다. 슬프도다! 신하가 본디 어리석으면,일찍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朝願聞道,夕死無悔。偶於道經藏中得《陰符傳》,不知何代人制也。詞理玄邈,如契自然。臣遂編之,附而入注。冀將來之君子,不失道旨。
아침에 원하기를 도를 들으면,저녁에 죽어도 후회가 없다. 우연히 도경의 감추어진 가운데 "음부전"을 얻었지만,어느 대의 사람이 만들었는지를 모른다. 문장과 이치가 심오하고 아득하니 마치 계(契)와 같이 자연스럽다.신(臣)이 마침내 펴내고,부가하여 주(注)로 들였다. 바라건대 장래의 군자가,도지(道旨)를 잃지 않기를 바란다.
黃帝陰符經
황제음부경
經曰:觀天之道,執天之行,盡矣。觀自然之道,無所觀也。不觀之以目,而觀之以心。心深微而無所不見,故能照自然之性。性惟深微而能照,其斯謂之「陰」。執自然之行,無所執也。故不執之以手,而執之以機。機變通而無所繫,故能契自然之理。夫惟變通而能契,斯謂之「符」。照之以心,契之以機,而「陰符」之義盡矣。「陰」為「暗」,「符」為「合」,以此文為序首,何昧之至也。故天有五賊,見之者昌。五賊者,命、物、時、功、神也。
경에이르기를 : 하늘의 도를 (마음으로)관하여,하늘의 운행을 잡으면, 다한 것이다. 자연의 도를 관하는 것은,보는 바가 없는 것이다. 눈으로서 보지않고,마음으로써 보는 것이다. 마음이 깊고 정미하면 보지못할 것이 없으니, 그러므로 능히 자연의 성품을 비추어볼 수가 있다. 성품이 오로지 심미(深微/깊고 정미함)해야만 능히 비추어볼 수 있으므로 그와 같은 것을 일러서 "음(陰)"이라고 한 것이다. 자연의 운행을 잡는다(執)는 것은, 잡는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손으로써 잡지않고,기틀로써 잡는 것이다. 기틀로 변통하면 붙들어 매지못하는 바가 없으니,그러므로 능히 자연의 이치를 쥘 수가 있는 것이다. 대저 오직 변통하여서 능히 쥘 수가 있는 것,이것을 일러서 符(부)라고 하는 것이다. 마음으로써 비추고,기틀로써 잡는 것,이것이 바로 음부의 뜻을 다함이다. 음(陰)은 암(暗)이 되고,부(符)는 합(合)이 되는 것으로,이 글로써 머릿말로 삼으니, 어찌 매(昧)에 이르겠는가. 그러므로 하늘에는 오적(五賊)이 있고,보는자는 창성하게 된다. 오적(五賊)은, 명(命), 물(物), 시(時), 공(功), 신(神)이다.
傳曰:聖人之理,圖大而不顧其細,體瑜而不掩其瑕。故居夷則遵道布德以化之,履險則用權發機以拯之。務在匡天地,謀在濟人倫。
전(傳)에 이르기를 : 성인의 이치는, 도모함이 크니 그 세세함까지 돌아보지 않으며, 좋은 점을 체득하면서 그 결점을 가리고 숨기지 않는다. 옛집을 무너뜨리고 도(道)를 높이고 덕을 펴서 교화하고, 겪는 것이 위험하면 곧 권(權)을 쓰고 기틀을 드러내서 구한다. 힘쓰는 것은 천지를 구함에 있고, 도모함은 인륜을 건져내는 것에 있다.
於是用大義除天下之害,用大仁興天下之利,用至正措天下之枉,用至公平天下之私,故反經合道之謀,其名有五,聖人禪之,乃謂之賊;天下賴之,則謂之德。故賊天之命,人知其天而不知其賊,黃帝所以代炎帝也。
이에 대의(大義)를 써서 천하의 해로움을 없애고,대인(大仁)을 써서 천하의 이로움을 일으키고, 지극히 바름을 써서 천하의 비틀어짐을 조처하고, 지극한 공변됨을 써서 천하의 사사로움을 평정하니, 그러므로 경(經)에 반하나 도(道)에 합하는 계략으로,그 이름은 다섯이며, 성인이 물려주고,이를 일러 적(賊)이라한다 ; 천하가 힘입으니, 곧 일러서 덕(德)이라한다. 그러므로 하늘의 명(命)을 훔쳐서, 사람은 그 하늘(의 命)은 알면서 그 도적은 알지 못하였으니, 황제가 염제를 대신한 까닭이다.
賊天之物,人知其天而不知其賊,帝堯所以代帝摯也。賊天之時,人知其天而不知其賊,帝舜所以代帝堯也。賊天之功,人知其天而不知其賊,大禹所以代帝舜也。賊天之神,人知其天而不知其賊,殷湯所以革夏命也。
하늘의 물(物)을 훔쳐서, 사람은 그 하늘(의 物)은 알면서 그 도적은 알지 못하였으니, 제요(帝堯)가 제지(帝摯)를 대신한 까닭이다. 하늘의 시(時)를 훔쳐서,사람은 그 하늘(의 時)은 알면서 그 도둑은 알지 못하였으니, 제순이 제요를 대신한 까닭이다. 하늘의 공(功)을 훔쳐서, 사람은 그 하늘(의 功)은 알면서 그 도둑은 알지 못하였으니, 대우(大禹)가 제순(帝舜)을 대신한 까닭이다. 하늘의 신령(神)함을 훔쳐서,사람은 그 하늘(의 神靈함)은 알면서 그 도둑은 알지못하였으니, 은탕(殷湯)이 하(夏)나라 명(命)을 개혁한 까닭이다.
周武所以革殷命也。故見之者昌,自然而昌也。太公以賊命為用味,以取其喻也。李筌不悟,以黃帝賊少女之命,白日上騰為非也。五賊在乎心,施行在乎天;宇宙在乎手,萬化生乎身。
주무왕이 은나라 명을 고친 까닭이다. 그러므로 보는 자가 창성하니, 자연스러운 창성이다. 태공(BC.1211-BC.1072)은 명(命)을 훔쳐서 이로써 일소(一消)함에 있는데, 천하사람들은 재미에 푹 빠지니, 이로써 그 비유를 취한 것이다. 이전은 깨닫지 못하고, 이로써 황제가 소녀의 명을 훔쳐, 대낮에 위로 올라갔다(하늘로)하니 잘못이다. 오적이 있는 곳은 마음이니, 시행하여 하늘에 있게되면, 우주는 손바닥에 있으며, 만화는 몸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傳》曰:其立德明,其用機妙,發之於內,見之於外而已矣。豈稱兵革以作寇亂哉?見其機而執之,雖宇宙之大,不離乎掌握,況其小者乎?知其神而體之,雖萬物之衆,不能出其胸臆,況其寡者乎?自然造化之力而我有之,不亦盛乎?不亦大乎?李筌等以五賊為五味,順之可以神仙不死。誣道之甚也。
<傳>에 이르기를 : 그 덕을 세움이 밝고, 그 기틀을 씀이 묘하여, 드러내는 것이 안에서부터이면,밖을 보는 것은 다 마친 것이다. 어찌 전쟁을 칭하여 도적이 난동한다고 하겠는가? 그 기틀을 보면 잡아서, 비록 우주가 크지만 손바닥에서 떠나지 않으니, 하물려 그 작은 것이랴? 그 신묘함을 알아서 체득하면, 비록 만물의 많은것들도 그 속마음을 벗어날 수 없으니, 하물며 그보다 적은 것이랴? 자연조화의 힘을 내가 가지고있으니, 또한 성하지 않은가?또한 크지 않은가? 이전등이 오적으로써 오미라하고, 순(順)하면 가히 신선이 되어 불사한다고 하였다. 무도(誣道)가 심한 것이다. 하늘의 성품이, 사람이고, 사람의 마음은 기틀이다.
天性,人也;人心,機也。立天之道以定人也。
하늘의 도를 세우고 이로서 사람을 정(定)하는 것이다.
《傳》曰:人謂天性,機謂人心。人性本自玄合,故聖人能體五賊也。天發殺機,龍蛇起陸;人發殺機,天地反覆。
<傳>(전)에 이르기를 : 사람은 천성이라하고, 기틀은 인심이라한다. 인성(人性)의 근본은 스스로 현(玄)과 합하니,그러므로 성인이 능히 오적을 체득하는 것이다. 하늘이 살기를 발하면,용과 뱀이 뭍으로 일어나고, 사람이 살기를 발하면 천지가 뒤집어진다.
《傳》曰:天機張而不生,天機馳而不死。天有馳張,用有否臧。張則殺威行,馳則殺威亡。人之機亦然。天以氣為威,人以德為機。秋冬陰氣嚴凝,天之張殺機也,故龍蛇畏而蟄伏。冬謝春來,陰退陽長,天之馳殺機也,故龍蛇悅而振起。天有寒暄,德亦有寒暄。德刑整肅,君之張殺機也,故以下畏而服從。德失刑偏,君之馳殺機也,故奸雄悅而馳騁。位有尊卑,像乎天地,故曰:天發殺機,龍蛇起陸,寇亂所由作;人發殺機,天地反覆,尊卑由是革也。太公、諸葛亮等以殺人過萬,大風暴起,晝若暝。以為天地反覆,其失甚矣。
<傳>에 이르기를 : 하늘의 기틀은 느슨해도 생기지 않고,하늘의 기틀은 치달려도 죽지 않는다.하늘에 치장(馳張)이 있고, 쓰임에는 나쁜것과 좋은것이 있다. 느슨하면 곧 위세를 꺽어서 행하고, 치달리면 곧 위세를 꺽어서 망하게 한다. 사람의 기틀 또한 그렇다. 하늘이 氣로써 위엄을 갖추고, 사람은 덕(德)으로써 기틀로 삼는다. 추동(秋冬)의 음기(陰氣)는 혹독하게 엉겨붙게하여, 하늘의 느슨함(張)을 꺾는 기틀이니, 그러므로 용과 뱀은 두려워서 칩거하여 엎드린다. 겨울이 물러나고 봄이 오면,陰이 퇴하고 陽이 장(長)하여, 하늘의 치달림을 꺾는 기틀이 되니, 그러므로 용과 뱀이 기뻐서 떨치고 일어난다. 하늘에 차고 따뜻함(寒暄)이 있으니, 덕(德)또한 차고 따뜻함이 있다. 德과 형벌이 단정하고 엄정하면,君의 느슨함을 꺽는 기틀이 되고, 그러므로 아래에서 두려워 복종하게된다. 덕을 잃고 형벌이 치우치면, 군(君)의 치달림을 꺾는 기틀이 되니, 그러므로 간웅이 기뻐서 멋대로 날뛴다. 위(位)는 존비(尊卑)가 있으니, 마치 천지와 같고, 그러므로 이르되 : 하늘이 살기를 내면, 용과 뱀이 땅에서 일어나고, 도적들이 어지럽게 말미암아 일어나는 바이니 : 사람이 살기를 발하면, 천지가 뒤집어지고, 존비(尊卑)가 이로 말미암아서 바뀌게된다. 태공, 제갈량등이 이로써 만명이 넘는 사람을 죽였으니, 사회의 대변혁이 일어났으며, 낮은 어스름같았다. 이로써 천지가 뒤집어졌으니, 그 잃어버림이 심하였다.
天人合發,萬變定基。
하늘과 사람이 합하여 함께 발(發)해야, 만가지 변화가 그 터전을 정한다.(*天人合德으로 되어있는것은 天人合發로 하여 옮겨적음)
《傳》曰:天以禍福之機運於上,君以利害之機動於下,故有德者萬變而愈盛,以至於王;無德者萬化而愈衰,以至於亡。故曰天人合發,萬變定基。自然而然也。(*故曰天人合發/故曰天人合德을 고쳐서 옮겨적음)
傳에 이르되 : 하늘이 화복(禍福)의 기틀로 위에서 운행하고, 임금이 이로움과 해로움의 기틀로서 아래에서 움직이니,그러므로 덕이 있는자는 만가지 변화가 갈수록 성하고, 이로써 왕(으뜸)에 이른다. 무덕자는 만가지 변화가 갈수록 쇠퇴하여 이로써 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일러서 하늘과 사람이 합하여 함께 발(發)하여야, 만가지 변화로 터전을 정하는 것이다. 자연이 그러한 것이다.
性有巧拙,可以伏藏。
성(性)에 교묘함과 졸렬함이 있으니, 가히 깊이 감추어야한다.
《傳》曰:聖人之性,巧於用智,拙於用力。居窮行險,則謀道以濟之;對強與明,則伏義以退避之。理國必以是,用師亦以是。
傳에이르되 : 성인의 성(性)은 지혜를 씀에 교묘하고, 힘을 쓰는데에는 졸렬하다. 어려움에 거하여 위험이 행해지면, 곧 도를 도모하여 구하고, 강함과 더불어 밝음에 대하여는, 곧 뜻을 숨기고 물러난다. 나라를 다스림에 반드시 이로써 하고 군사를 운용함에 또한 이로써 한다.
九竅之邪,在乎三要,可以動靜。
아홉구멍의 사(邪)는,耳,目,口 삼요(三要)에 있는데 가히 이로써 동(動)하고 정(靜)한다.
《傳》曰:九竅之用,三要為機。三要者,機、情、性也。機之則無不安;情之則無不邪;性之則無不正。故聖人動以伏其情,靜以常其性,樂以定其機。小人反此,故下文云:太公為三要,為耳、目、口。李筌為心,神、志,皆忘機也。俱失《陰符》之正意。
傳에 이르기를 : 구규(九竅)의 용(用)은, 삼요(三要)가 기틀이 된다. 삼요(三要)는 기(機), 정(情), 성(性)이다. 기(機)로 하여 곧 불안(不安)을 없애고,정(情)으로 하면 사사롭지 않음(不邪)이 없고, 본성(性)으로 하면 바르지 않음(不正)이 없다. 그러므로 성인이 동(動)함은 그 정(情)을 숨김으로써하고, 고요히 함은 그 성품을 항상함으로써하고, 즐거움은 그 기틀을 편안히 함으로써한다. 소인은 이와 반대이니, 그러므로 下文에 이르되 : 태공이 삼요(三要)로 삼은것은 耳,目,口이다. 이전(李筌)은 心,神,志로 삼았으니 다 허망한 기틀인 것이다. 모두 음부(陰符)의 바른 뜻을 잃은 것이다.(李筌의 注 : 아래참조)
* 九窍之邪,在乎三要,可以动静。李筌注:两叶掩目,不见泰山;双豆塞耳,不闻雷霆;一椒掠舌,不能立言。九窍皆邪,不足以察机变。其在三者,神心志也。机动未朕,神以随之。机兆将成,心以图之。机发事行,志以断之。其机动也,与阳同其波。 (以上 李筌의 注)
火生於木,禍發必克;奸生於國,時動必潰。知之修煉,謂之聖人。
화(火)는 목(木)에서 생기고,화(禍)는 생겨나면 반드시 극복을 한다. 적과 내통하는 사람이 나라에서 생기고,때가 動하면 반드시 무너뜨린다.이것을 알고 수련을 하는 사람을 일러서 성인이라고한다
《傳》曰:夫木性靜,動而生火,不覺火盛,而焚其質。由人之性靜,動而生奸,不覺奸成而亂其國。夫明者見彼之隙以設其機,智者知彼之病以圓其利,則天下之人,彼愚而我聖。是以生者自謂得其生,死者自謂得其死,無為無不為,得道之理也。天生天殺,道之理也。
<傳>에 이르되 : 대저 木(목)의 성품은 靜(정)한것인데, 動(동)하면 火를 낳고, 火의 盛함을 깨닫지 못하면, 마침내 그 바탕을 태워버린다. 사람의 성품이 고요함으로 말미암아서, 움직이면 간사함이 생겨나고, 간사함이 이루어짐을 깨닫지 못하면 그 나라가 어지러워진다. 대저 밝은자는 저쪽의 틈을 보고서 이로써 그 기틀을 세우고, 지혜로운자는 저쪽의 병폐를 알고나면 이로써 그 이로움을 원만하게하니, 곧 천하사람들은 어리석음을 덮어줌이 우리 성인인 것이다. 이로서 생자(生者)는 스스로 그 생명을 얻고, 사자(死者)는 스스로 그 죽음을 얻게되니, 무위로 하되 하지 않음이 없어서, 도의 이치를 얻는 것이다. 하늘이 내서 살리고 하늘이 죽이니, 도의 이치이다.
天地,萬物之盜;萬物,人之盜;人,萬物之盜。三盜既宜,三才既安。
천지는,만물의 도(盜)이며, 만물은, 사람의 도(盜)이며, 사람은 만물의 도(盜)이다. 삼도(三道/天地人)가 이미 마땅하니, 삼재가 이미 편안하다.
《傳》曰:天地以陰陽之氣化為萬物,萬物不知其盜。萬物以美惡之味饗人,人不知其盜。人以利害之謨制萬物,萬物不知其盜。三盜玄合於人心,三才靜順於天理。有若時然後食,終身無不愈;機然後動,庶類無不安。食不得其時,動不得其機,殆至滅亡。
<傳>에 이르기를 : 천지는 음양의 기(氣)로써 변화하여 만물이 된것이니 만물은 그 도(盜)를 알지 못한다. 만물이 미악(美惡)의 맛으로써 사람을 대접하는데, 사람은 그 도(盜)를 알지못한다. 사람은 이해의 계략으로써 만물을 만들어내니, 만물은 그 도(盜)를 모른다. 삼도(三盜)가 사람의 마음에서 현묘하게 합하니, 삼재는 천리에 고요히 따른다. 마치 때가 된 후에 먹는 것과 같아서, 종신토록 낫지 않는 것이 없게된다. 기틀이 되고난후에 움직이면, 많은 부류는 불안이 없게된다.먹되 그 때에 맞지않고,움직이되 그 기틀에 맞지 않으면, 위태롭고 멸망에 이르게 된다.
故曰食其時,百骸治;動其機,萬化安。人知其神而神,不知其神所以神也。
그러므로 때에 맞추어 먹어서, 온몸의 뼈를 다스리고, 움직이되 그 기틀에 맞게하여서, 만가지 변화가 안정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신(神)이 신령(神靈)스러운것은 아는데, 그 신(神)이 신령(神靈)스러운 까닭은 알지 못한다.
《傳》曰:時人不知其盜之為盜,只謂神之能神。《鬼谷子》曰:彼此不覺謂之神。蓋用微之功著矣。李筌不知此文意通三盜,別以聖人、愚人為喻,何甚謬也。
<傳>에 이르기를 : 때에 사람들은 그 盜(도)의 훔치는 행위는 모르고, 다만 신의 능히 신령함을 말한다. <귀곡자>에 이르기를 : 피차에 깨닫지 못하는 것을 일러서 신(神)이라한다하였다. 대개가 은미함을 써서 공을 드러낸다. 이전(李筌)은 이 글의 뜻을 알지 못하여 삼도(三盜)를 통하여, 따로 성인(聖人), 우인(愚人)을 비유하였는데, 심한 오류이다.
日月有數,大小有定,聖功生焉,神明出焉。
일월이 수(數)가 있고, 대소가 정해져있으니, 성인의 공(功)이 나오고, 신(神)의 밝음(明)이 나오는 것이다.
《傳》曰:日月有准,運數也;大小有定,君臣也。觀天之時,察人之事,執人之機,如是則聖得以功,神得以明。心冥理合,安之善也。筌以度數為日月,以余分為大小,以神氣能生聖功神明,錯謬之甚也。
<傳>에 이르기를 : 일월에 표준이 있고 운수가 있다 ; 대소가 정해져 있으니 군과 신(君臣)인 것이다. 하늘의 時를 보고, 사람의 일을 살피고, 사람의 기틀을 잡아서, 이와 같이하면 곧 성인은 공을 얻고, 신은 밝음을 얻는다. 마음이 깊으면 이치에 합하고, 편하면 선함이다. 전(筌)은 도수로써 일월로 하고, 나머지를 나누어서 대소(大小)로하였으며, 신기(神氣)로써 능히 성인(聖人)의 공(功)과 신(神)의 밝음을 生한다고 하였으니,착오가 심한 것이다.
其盜機也,天下莫能見,莫能知也。君子得之固躬,小人得之輕命。
그 기틀을 훔치는 것은, 천하사람들이 능히 보지도 못하고,능히 알지도 못한다. 군자가 얻으면 몸을 견고히하는것이고, 소인이 얻으면 명(命)을 가볍게하는 것이다.
<傳>曰:其盜微而動,所施甚明博,所行極玄妙。君子用之,達則兼濟天下,太公其人也。窮則獨善一身,夫子其人也。豈非擇利之能審乎?小人用之,則惑名而失其身,大夫種之謂歟?得利而亡義,李斯之謂歟?豈非信道之不篤焉? (*信道 : 信奉正道/(論語)執德不弘,信道不篤,焉能爲有,焉能爲亡!)
<傳>에 이르기를 : 그 훔침이 미묘하게 움직이나, 시행하는 바가 매우 분명하고 넓고, 행하는 바는 지극히 현묘하다. 군자가 사용하여, 통달(達)하면 겸하여 천하를 구제하니, 太公(姜太公)이 그 사람이다. 철저히 하면 홀로 한몸은 선량히 할 수 있으니, 부자(夫子/공자)가 그 사람이다. 어찌 능히 살펴서 (太公,孔子는)이로움을 택한것이 아니겠는가? 소인이 사용하여서,곧 혹 이름이 있으나 그 몸을 잃게되는 것이니, 대부의 부류라고 이를수 있겠는가? 이로움을 얻고서 의(義)를 잃어버리니, 이(李)와 같은 사람을 이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찌 정도(正道)를 따름에 진실한 마음이 깃들어 있지 않다고 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瞽者善聽,聾者善視。絕利一源,用師十倍。三返晝夜,用師萬倍。
눈이 먼 사람은 잘 듣고, 귀가 먼 사람은 잘본다. 이로운 하나의 근원을 잘라내면, 쓰고 본받는 능력은 열배이다. 3번을 낮과 밤에 하면, 쓰고 본받는 능력은 만배이다.
《傳》曰:瞽者善於聽,忘色審聲,所以致其聰。聾者善於視,遺耳專目,所以致其明。故能十衆之功。一晝之中三而行之,所以至也。一夜之中三而思之,所以精也。故能用萬衆之人。李筌不知師是衆,以為兵師,誤也。
<傳>에 이르기를 : 눈먼사람은 듣기를 잘하니, 색(色/물체)은 잊고 소리로 살피니, 그 귀밝음이 지극한 까닭인 것이다. 귀가 안들리는 사람이 잘 보는 것은, 귀는 버리고 눈에만 전일(專一)하는 것이니, 그 밝음이 지극한 까닭인 것이다. 그러므로 능히 열배 많은 공(功/효능)인 것이다. 하루 낮의 가운데 3번을 행하면, 지극한 까닭이다. 하루 밤의 가운데 3번을 생각하면, 능숙하게 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능히 쓰는 것을 만배로 많이하는 사람이다. 이전(李筌)은 본받음(師)이 많은 것을 모르고서, 병사(兵師)로 하였으니 잘못이다.
心生於物,死於物,機在於目。
마음은 물에서 발생하여, 물에서 죽으니, 기틀은 눈에 있는 것이다.
《傳》曰:心有愛惡之情,物有否臧之用。目視而察之於外,心應而度之於內。善則從而行之,否則違而止之,所以勸善而懲惡也。筌以項羽昧機,心生於物;以符堅見機,心死於物。殊不知有否臧之用。
<傳>에 이르기를 : 마음에는 사랑하고 싫어하는 정(情)이 있고, 물건에는 좋고 나쁨의 쓰임이 있다. 눈으로 보는 것은 밖을 살피는 것이니, 마음이 응하고 헤아림은 안에서한다. 좋으면 따라서 행하고, 그렇지 않으면 어기고 그치니, 그런 까닭에 권선징악하는 것이다. 전(筌)은 항우가 어리석은 기틀로써, 물(物)에서 마음이 생겨났고, 부견(符堅/338-385,文玉,大秦天王)이 기틀을 봄으로써, 마음은 물(物)에서 죽었다. 부장(否臧/좋고 나쁨)의 쓰임이 있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天之無恩而大恩生,迅雷烈風莫不蠢然。
하늘은 은혜없이 대은혜를 내보내니, 맹렬한 우레와 매서운 바람으로 모두를 꿈틀거리지 않는 자가 없게 한다.
《傳》曰:天以凶象咎徵見人,人能儆戒以修德。地以迅雷烈風動人,人能恐懼以致福。其無恩而生大恩之謂也。李筌以天地不仁為大恩,以萬物歸於天為蠢然。與《陰符》本意殊背。(** 筌曰:天心无恩,万物有心,归恩于天。老子曰:“天地不仁,以万物为刍狗;圣人不仁,以百姓为刍狗。”是以施而不求其报,生而不有其功。及至迅雷烈风,威远而惧迩,万物蠢然而怀惧。**)
<傳>에 이르기를 : 하늘이 흉상(凶象)으로써 재앙의 조짐을 사람에게 보이면,사람들은 능히 덕을 닦음으로써 경계해야한다. 땅에서 맹렬한 우레와 매서운 바람으로써 사람을 움직이면, 사람들은 능히 겁을 먹고 가슴에 손을 얻고 절을 한다. 그것이 은혜없이 대은(大恩)을 生한다는 것을 이르는 것이다. 이전(李筌)이 천지가 不仁(無心)으로 大恩을 하니, 이로써 만물은 하늘이 꿈틀거리게 하는 데로 돌아간다. 음부의 본뜻과 더불어 가장 어긋나는 것이다.
至樂性余,至靜性廉。
지극한 낙(樂)은 성품이 여유가 있고, 지극한 정(靜)은 성품이 청렴하다.
《傳》曰:情未發謂之中,守中謂之常,則樂得其志而性有餘矣。性安常謂之自足,則靜得其志而廉常足矣。筌以奢為樂性,以廉為靜,殊乖至道之意。
<傳>에 이르기를 : 정(情)이 드러나지 않는 것을 중(中)이라하고, 중(中)을 지키는 것을 상(常)이라하니, 곧 그 뜻을 기꺼이 따르니 성품에 여유가 있는 것이다. 성품이 편하고 항상하는것을 일러서 자족이라하고, 곧 고요히 그 뜻을 얻으면 청렴하여 항상 만족하게된다. 전(筌)은 사치로써 즐거운 성품으로하고, 청렴으로써 고요함으로 하였으니, 지극한 도의 뜻에서 매우 어긋난 것이다.
天之至私,用之至公。
하늘은 지극히 사사로운데, 쓰임은 지극히 공정하다.
《傳》曰:自然之理,微而不可知,私之至也。自然之功,明而不可違,公之至也。聖人體之亦然。筌引《孫子》云:視卒如愛子,可以之俱死。何也?
<전>에 이르기를 : 자연의 이치는, 미묘하여 알수가 없으며, 사사로움은 지극하다. 자연의 공은, 분명하여 어길 수 없으며, 공정함이 지극하다. 성인이 체득한것 또한 그렇다.전(筌)이 <손자>을 끌어다 이르되 : 병사를 사랑하는 자식처럼 보면, 가히 모두 죽을수가 있다. 왜인가?
擒之制在氣。
사로잡아서 제어하는 것은 기(氣)에 있다.
《傳》曰:擒物以氣,制之以機,豈用小大之力乎?太公曰:豈以小大而相制哉?筌不知擒之義,誤以禽獸。註解引雲玄龜食蟒,黃腰啖虎之類,為是悲哉!(筌曰:玄龟食蟒,鹯隼击鹄,黄腰啖虎..)
<傳>에 이르기를 : 사물을 사로잡는 것은 기(氣)로써하고, 제어하는것은 기틀로서하니, 어찌 소,대(小,大)의 힘을 쓰겠는가? 태공은 이르기를 : 어찌 소(小)와 대(大)로써 서로 제어하겠는가? 하였다. 전(筌)은 사로잡음(擒)의 뜻을 모르고 금수(禽獸)로 하여 틀린 것이다. 주해(註解)에서 현구식맹(玄龜,食蟒), 황요담호(黄腰啖虎)의 종류를 끌어댔으니, 이는 슬픈일이라 할 것이다.
生者死之根,死者生之根。恩生於害,害生於恩。
삶은 죽음의 뿌리이고,죽음은 삶의 뿌리이다.은혜는 해(害)에서 생겨나고,해(害)는 은혜에서 생겨난다.
生者,人之所愛,以其厚於身。太過則道喪,而死自來矣。死者,人之所惡,以其損於事。至明則道存。而生自固矣。福理所及謂之恩,禍亂所及謂之害,損己則為物之所益,害之生恩也。筌引《孫子》用兵為生死,丁公、管仲為恩害。異哉!(筌曰:谋生者必先死而后生,习死者必先生而后死。鹖冠子曰:不死不生,不断不成。孙武曰:投之死地而后生,致之亡地而后存.)
삶은,사람의 아끼는 바이고,그것으로써 몸에 두터이 한다.너무 지나치면 도가 상(喪)하고, 이어서 죽음이 스스로 오게된다. 죽음이란, 사람의 싫어하는 바이니, 그것으로써 일을 잃어버린다. 지극히 밝으면 도가 존재한다. 이로서 삶은 스스로 견고해진다. 복을 다스려서 미치게하는바를 일러서 은혜라고하고, 화를 어지럽게하여 미치게하는바를 일러서 해(害)라고 하며, 자기를 덜어내면 물(物)의 더하는 바가 되며, 해침(害)은 은혜를 낳는 것이다 .筌은 <손자>를 끌어다가 용병을 생사로 하고, 정공, 관중을 은,해(恩,害)로 하였다. 다른 것이다!
愚人以天地文理聖,我以時物文理哲。人以虞愚,我以不虞聖。人以期其,我以不期其聖。
어리석은 사람은 천지문리로써 성(聖)으로하지만,나는 때와 만물의 문리로써 밝음으로 한다. 사람들은 헤아림, 어리석음으로하지만, 나는 헤아리지 않음으로써 성(聖)을 삼는다. 사람들은 기약함으로써 그 성(聖)을 삼지만, 나는 기약하지 않음으로써 그 성(聖)으로 삼는다.
《傳》曰:觀天之運四時,察地之化萬物,無所不知而蔽之以無知,小恩於人以蒙自養之謂也。知四時之行,知萬物之生,皆自然也。故聖人於我以中自居之謂也。故曰死生在我而已矣。
<傳>에 이르기를 : 하늘의 운행사시를 관하고,땅의 변화만물을 관찰하여, 알지 못하는 바가 없으니 무지를 덮고, 사람에게 작은 은혜를 베풀어, 이로써 자양(自養)을 받는다 이른다. 사시의 운행을 알고, 만물의 생을 아는것은 다 스스로 그러함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나에게서 이로써 가운데 스스로 거한다고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가로대 죽고사는 것이 나에게 있을 뿐이라고 한다.
人之死亡,譬如沈水自溺,投火自焚,自取滅亡。理國以道,在於損其事而已。理軍以權,在於亡其兵而已。
사람의 사망은, 비유하면 물에 들어가 스스로 익사하고, 불에 들어가 스스로 타고, 스스로 멸망을 취하는 것이다. 도(道)로써 나라를 다스리면, 그 일을 덜어냄에 있을 뿐이다. 힘으로써 군사를 다스리면, 그 병(兵)을 죽이는데 있는 것일 뿐이다.
故無死機則不死矣,鬼神其如我何?聖人修身以安其家,理國以平天下,在乎立生機。以自去其死性者,生之機也。除死機以取其生情者,死之機也。筌不天道,以愚人,聖人,體道,愚昧之人而驗天道,失之甚也。故曰沈水入火,自取滅亡。注在上矣。
그러므로 죽음의 기틀이 없으면 곧 죽지않는 것이니 귀신이 그 나를 어찌하랴? 성인은 먼저 나를 닦아서 그 집안을 편안히하고, 나라를 다스려서 천하를 편안히 하니 삶의 기틀을 세우는데에 있는 것이다. 이로써 스스로 그 완고한 성격을 물리쳐버리면, 삶의 기틀인 것이다. 사기(死機)를 없애고 그 애욕의 정(情)을 취하는 것은, 죽음의 기틀이다. 전(筌)은 천도가 아니며, 어리석은 사람으로써 성인이 체득한 도를, 우매한 사람으로 천도를 경험한것이니, 잃어버림이 심한 것이다. 그러므로 물로 들어가고 불로 들어가, 스스로 멸망을 취하는 것이다. 주(注)는 위에 있다.
自然之道靜,故天地萬物生。
자연의 도는 고요하니, 그러므로 천지만물이 생겨난다.
《傳》曰:自然之道,無為而無不為。動靜皆得其性,靜之至也。靜故能立天地,生萬物,自然而然也。伊尹曰:靜之至,不知所以生也。
<傳>에 이르기를 : 자연의 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無爲), 하지않는바(不爲)가 없다. 동(動), 정(靜)은 모두 그 성품을 얻으니, 정(靜)은 지극함이다.정(靜)은 그러므로 능히 천지를 세우고, 만물을 낳고, 자연스럽게 그러함이다. 이윤은 이르기를 ; 고요함이(靜) 지극한 것이며, 생겨난 소이(所以)는 알지못한다.
天地之道浸,故陰陽勝。
천지의 도가 잠기니(沈), 그러므로 음양이 승(勝)한다
《傳》曰:浸,微也。天地之道,體著而用微,變通莫不歸於正,微之漸也。微漸故能分陰陽,成四時。至剛至順之謂也。
<傳>에 이르기를 : 침(浸)은 미묘함이다. 천지의 도는, 체를 드러내면서 미묘함을 쓰고, 변통하여도 정(正)으로 돌아가지 않음이 없으니,미세하면서 적시는 것이다. 징후나 징조(微漸)는 그러므로 능히 음양으로 나뉘어, 사시를 이룬다. 지극한 강, 지극한 순을 이른다.
陰陽相推,而變化順矣。
음양이 서로 밀어서, 변화가 순조로운 것이다
《傳》曰:聖人變化順陰陽之機。天地之位自然,故因自然而冥之,利自然而用之,莫不得自然之道也。是故聖人知自然之道不可違,因而制之。注在文上。
<傳>에 이르기를 : 성인이 변화에 순응함은 음양의 기틀이다.천지(天地)의 위(位)는 자연이니, 그래서 자연이 그윽하며, 이로움을 자연이 쓰도록 하니, 자연의 도를 얻지 않을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고로 성인이 자연의 도를 가히 어길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이로인하여 마름질을 하는 것이다. 주는 윗글에 있다.
至靜之道,律歷所不能契。
지극히 고요한 도는,율력으로도 합치할 수가 없다
《傳》曰:道之至靜也,律歷因而制之,不能葉其中鳥獸之謂也。
<傳>에 이르기를 : 도의 지극한 고요함은, 율력을 인하여 제정하니, 나무잎 가운데의 조수(鳥獸)를 이를 수가 없는 것이다.
(良曰:觀鳥獸之時,察萬物之變,鳥獸至淨,律曆所不能契,從而機之)/張良의 주석문
爰有奇器,是生萬象;八卦甲子,神機鬼藏。
그래서 기기(奇器)가 있어, 이에 만상이 생(生)하는 것이며 : 팔괘갑자는, 신기(神機)이고 귀장(鬼藏)인 것이다.
《傳》曰:八卦變異之伎,從是而生。上則萬象,下則萬機。用八卦而體天,用九疇而法地。參之以氣候,貫之以甲子,達之以神機,閉之以詭藏,奇譎之蕩自然也。
<傳>에 이르기를 : 팔괘변이(變異)의 재주는 이를 따라서 생겨난다. 올라가면 만가지 상(象)이고, 내려가면 만가지 기틀이다. 팔쾌를 써서 하늘을 체득하고, 구주(九疇/泛指治理天下的大法)를 써서 땅을 본받는다. 기후로써 참고하며, 갑자(甲子)로써 꿰고, 신기(神機)로써 정통하며, 괴이하게 감추어 폐(閉)하고, 기묘하고 변화무쌍하게 속여서(奇譎)자연을 움직이는 것이다.
陰陽相勝之術,昭昭乎進乎象矣。
음양이 서로 이기는 재주(術)는, 소소하여 나아가서(進), 상(象)을 비춘다.
《傳》曰:陰陽相勝之術,恆微而不違乎本,明之信可明,故能通乎精曜象矣。
<傳>에 이르기를 : 음양이 서로 이기는 재주는,항상 미묘하면서도 근본을 어기지 않고, 밝게하면 가히 밝아질수 있음을 믿으니, 그러므로 능히 눈부신 광휘(精曜)의 상(象)에 통하는 것이다.
출처 : http://ewwiz.blog.me/198112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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