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촌의 글밭 - 詩.書.畵/南村先生 詩書

수필-소갈비에 양주두병 먹고도 스님인가요-3편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06. 12. 4. 18:31
 

 

병기와 선재는 역시 작업이 끝나고 낚시도구를 챙겨서 나란히 앉게

된 것은 밤11시가 훨씬 넘어서였다.  병기가 휴가를 다녀 온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건만 서로 업무가 바빠 이제야 자리를 함께 했다.

바다는 고요했고 안개까지 끼어 습기가 끈적대어 바다 속에서 괴물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밤

낚시자리를 잡고는 선재가 역시 먼저 대화를 재촉한다. 

“그래 부친은 만나 뵈었던가요?”

“만나 뵈었지요. 죠니워카 두병을 들이키게 했지요”

“죠니워카 두병이라니요?”

그 전말은 이러했다.

병기는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기내에서 줄곧 아버지께 할 말을

골똘히 생각했다.  그리고 죠니워커 양주 2병을 샀다. 

그리고 서울 김포공항에서 아내와 자식들을 만나 서울 미아리 고개 넘어 정릉 자기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곧바로 강원도로

떠났다.  강원도 정선읍에서 얼마 멀지않은 곳에 해발 1256m의

청옥산이라고 있는데 그 산속 조그만 절에 주지로 계시는데

절의 위치는 그야 말로 심산유곡이다.  절로 오르는 계곡은 맑은 물소리 낭 낭하고 다람쥐가 사람을 보고도 도망치지 않고 발치에서 마른세수를 하는 폼이 사람의 발길이 자주 닿지 않는 곳임을 알 수 있다.  절이 가까워지자 법당으로부터 들려오는 , 목탁소리, 염불소리가 낭 낭한데 절 주변에는 향 내음과 아름 들이 잣나무며

밤나무가 울창하고 그 나무아래에 때는 7월이라 텃밭을 일구어

상추, 쑥갓, 풋고추, 아욱, 시금치 등의 푸성귀가 제법 어우러져 있었다.  그 조그만 텃밭에서 풋고추 따는 할머니께 인사드리니

단박에 알아보시고 반색을 한다. 

“어서 오시구랴 스님은 시방 불공드리고 계시는데”

“할머니 저를 알아보시겠어요?”

“아 알 고 있지 주지스님 자제분 아니 신가여 ! 작년인가 제 작년인가 한 번 다녀 가셨지여?  들어가서 좀 기다리시지”

할머니는 이 절에서 밥도 해주고 허드렛일을 봐주는 분인데 중년에

남편을 여이고 이곳에 와서 절에 의지하고 사는데 불심이 깊어서

10여년 지내고 보니 이제는 절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분이

방으로 안내하면서 묻지도 않는 말씀을 하신다.

“요 아래 평안에 사는 우리 신도가 시아버지 천도불공을 올린다고

  오시어서 지금 천도 제를 지내고 있는 중이래요.”

“이제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한 시간 정도 기대리야 될기래요.

  좀 시장하시겠지만 ........“

“네 이렇게 친절하게 안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후 3시가 넘도록 앉아 있으려니 시장하고 지루해서 윗목에 보리

불경책과 더불어 아버님이 쓰시는 것 같은 비망록이 눈에 들어왔다

 

옳지 이걸 읽어봐야 하겠구나. 하고 보물 책이라도 만난 듯 누가

들어오지 않나 하고 밖의 동정을 살핀 후 재빨리 펴 보았다.

아버님의 심상을 알아 보기위해 여기저기를 바쁘게 뒤적여 보았다 마음에 흐르는 심상을 나타낸 문구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누가 와서 어떠한 이야기를 하고 갔다는 것만 쓰여 있었다. 

주로 인생에 관한 상담 이였다. 

내용으로 보아 이지역의 군수, 면장, 각 학교 교장선생님 등

지역 유지 분들과 대단히 깊은 친분을 맺고 있으며

그 분들이 크고 작은 일들을 결정 할 때면

반드시 찾아와 그 일에 대한 운세를 감정하고 행하는 듯싶다. 

불공이 끝나고 점심을 먹고 참여한 신도 가족들과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고 또 저녁 먹고 저녁 예불 드리는 모든 절차가 끝나고 신도들이 모두 떠나고 부친과 마주하여 인사를 올린 것은 밤9시가

넘어서였다.


 1921년생 이신 아버님 올해가 1985년이니 65세이신데 머리는 백발이 성성한데 얼굴 모습은 대추 빛 같은 건강한 모습이시다. 

부친이 건강한 것을 싫어할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마는

이 병기는 처자식들 죽을 고생 다 시키고 혼자 심산유곡

공기 좋고 물 맑은 절경만 찾아 살고 계시는 아버지의 인생이

어쩐지 이기주의자처럼 보인다. 

이제 그동안 벼르고 벼르던 일을 시작하리라 속으로 다짐하고서

“해외 생활 하다가 휴가 받아서 인사차 들렸습니다. 제가 귀국 하다 보니 좋은 술이 있어 아버님 대접하려고 두 어병 사왔습니다. 

평생 자식에게 처음 받아보는 술잔이오니 부디 거절 마시고 드시기를 바랍니다.” 하고는 죠니워커 양주 두병을 꺼내 놓았다.

물론 속가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광경이다. 

아버지가 술을 좋아하실 경우 자식이 해외 나들이 하며 양주 두병

사다가 한잔 딸아 올리는 것이 오히려 아름답게 까지 보일 일이건만 이 자리는 전혀 그것과는 정반대이다. 

佛敎에 出家한 후로 술을 한 방울도 입에 안대고 수행에만

열중해온 고승에게 불쑥 내민 독 하디 독한 양주2병,


이 병기에게는 평생에 쌓인 분풀이요 스님에게는 평생 닦은 수행의 커다란 시험이며 풀기 어려운 화두이다.  1953년에 출가하여 30여년을 하루 같이 닦아온 禪僧 慧庵(선승 혜암) 과연 그는 이 화두를 어떻게 풀어 낼 것인가?


이 병기는 온몸이 후끈 달아올라 벌써 등줄기에 땀이 흥건하다.

너무 긴장한 탓일까 그러나 떨리는 손으로 병뚜껑을 비틀어

그 뚜껑에 술을 따른다.  양주는 뚜껑에 따라 마 실수 있도록

되어있고 더구나  독주이다 보니 큰 잔에 먹을 수도 없는 것이다.

한잔 따라서 두 손으로 아버님 전에 드린다. 

드디어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노스님이 눈을 뜨더니 술잔을 들고 있는 이 병기에게 큰소리로 대갈 일성

“옛 기 이놈 어디서 그따위로 배웠느냐”

너무나 긴장하고 있던 병기는 깜짝 놀라며 술잔을 휙 떨 군다.

내심 그러면 그렇지 어떻게 이 독주를 받아 마시랴 하고 그다음

행동을 시작하려 하는데 전혀 예기치 못한 말씀이 터져 나온다.

“이놈아 그래 어른에게 술을 대접하려면 술잔에다 정식으로 딸아

 올릴 일이지 어찌 병뚜껑 이란 말이냐”

아니 정말 받아 잡수실 작정 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더욱 잘되었다. 산속에서만 있다 보니 이 술이 얼마나

독 한줄 몰라서 하시는 소리지 하고는 윗목을 흘끔 보니

사기로 된 물 컵이  보인다. 옳지 저 컵으로 드려야하겠군

하고는 물 컵을 갖다가 독주를 한잔 가득 따라 부어 올리며

“저희들은 양주를 마실 때 이 뚜껑으로 마시던 것이 습관이 되어

그만 실수를 했습니다. 노여움을 푸십시오. 이제 컵에 딸아 올리니

한잔 드십시오.”그러니 이제는 더욱더 역정을 내시며

“야 이놈아 그래 양주를 먹는 데는 안주도 없이 먹는 다더냐?

“아... 아닙니다. 곧 마련해 오겠습니다.”

이 양반 그러면 내가 그만 둘 줄 알겠지 어림없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하실수록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질 것입니다.

내심 쾌재를 부르면서 절간을 나와 휭 하니 아랫마을로 뛰었다.

실은 아까 낮에 돼지갈비를 몇 근 사다가 이곳에서 멀지 않은

민가에 맡겨놓고 왔기 때문이다.

몇 달 동안 연구했던 일인데 실수가 있을 리 없다.

불과 한 시간 여 만에 뜨끈뜨끈하게 구운 돼지갈비가 30여 년 동안

고기 한 점 술 한 방울 먹어본바 없는  혜암 스님 앞에 놓여졌다.


그리고 그 옆에 커다란 사기 컵에 불을 붙이면 불이 확 붙는다는

독 하디 독한 양주가 가득 부어졌다. 

살생을 금하고 고기와 술을 일 체 금하는 신성한

절간에서 이 병기는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긴장된 상태에서

바라본다.  이 깊은 산속에서 안주 타령을 하면

적당히 넘어 갈 줄 알았겠지만 어림 반 푼어치도 없습니다.

이제 꼼짝없이 술, 고기 먹은 중으로서 파계승이 될 것이겠지 하고

참으로 잔인한 보복을 하고 있다.


또한 독한 술에 취해서 정신 못 차리는 도도한 스님의 모습 또한

과 관이겠지 하고 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음 이제야 한 잔 먹을 만 하겠구먼”

하시더니 그 독한 양주를 그 큰 잔에 가득 부은 것을 그대로 쭉 들이키는 것이 아닌가? 실로 눈을 의심할 일이다. 

세속에서 술깨나 먹는다는 사람들도 이렇게는 못하는 법인데

그리고는 돼지갈비를 덥석 집더니 두 손으로 잡고 뜯는 것이

아닌가.  이 병기는 아버지 얼굴 한 번 바라보고 돼지고기 한 번 바라보고 정신이 나갔다.  병기는 술을 먹지 못한다. 

한잔만 먹어도 머리가 깨질 듯 아파서 한잔도 못 먹는다. 

그리고 고기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주로 채식을 즐긴다.

다시 예의 그 큰 컵에 다시 술을 채우며 이제는 약간 겁이 난다.

이러다 노인네 돌아가시게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안주가 좋은데 위험하기야 하려고 싶어 가득 부었다. 

술을 따르는 병기의 얼굴을 말끔히 바라보시던 혜암은


“네놈이 내게 할 말이 많을 터.  오늘 그것을 내게 다 털어 놓고

  가거라. 복장에 넣고 다니면 무거워서 병이 되느니라”

  병기는 자기의 속을 유리알 들여다보듯 하시는 아버지

  아니 노스님의 능력을 조금은 알듯하여 섬 짓했다.

“몇 년 전에는 번뇌가 생긴다고 말을 막으시더니

  오늘은 왼 일이십니까?”

“아! 이놈아 오늘은 술과 고기가 있질 않느냐?”

언 듯 이해가 안가는 대답이지만 하려고 했던 것이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1. 아버지가 출가하시고 나서 할아버지가 3년 동안 원망하시며

   병마와 싸우다 돌아가신 이야기

2. 그 병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하신 어머니 이야기

3. 가난과 굶주림으로 자살한 누이 이야기

4. 평생 동안 아버지만을 기다리다 여동생 결혼식 때 몰인정한

   아버지모습 본 후 병을 얻어 돌아가신 어머니 이야기

저녁 11시경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새벽 4시까지 계속 됐다.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때로는 목소리가 격해져서

조용한 절간이 떠나가도록 쩌렁쩌렁 소리치기도 하고

때로는 아주 조용히 그러나 서리서리 한 맺힌 어조로 아버지께

노골적인 원망을 털어 놓기도 했다. 

말을 끝낸 병기는 고개를 숙인 채 흐르는 눈물을 주먹으로

훔치고서 술잔에 술을 따른다.  마지막 잔이다. 

그 독한 술을 아버님의 가슴에 모두 딸아 부은 것이다. 

아무 말 없이 주 욱 마시고는 마지막 하나 남은 갈비를 집어서

깨끗이 잡수신다.  이야기도, 고기도, 술도 끝났다. 

병기는 이렇게 하면 가슴이 후련해지고 아버님을 용서 할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아직 그렇지가 않았다. 

그래서 또 공격을 한다.


“아버님은 지난 세월동안 불도를 얼마나 닦으셨는지 모르지만

할아버지와 우리 가문에 자식으로서 불효를 하셨고 사랑하는

한 여인에 대한 숭고한 사랑에 배신 하셨고 자식들에게

가장으로서 의무를 다 못한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지난밤에 술을 두병이나 자시고 고기를 잡수셨으니

불교에도 그 교리를 어겼습니다.”

가부좌를 틀고 돌부처처럼 앉아 있던 아버님이 이제 비로소

입을 열었다. 전에 없던 참으로 부드러운 목소리로

“ 아들아!

오늘 네가 내게 행한 일로 네 마음속에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풀렸으면 하는 바램뿐이니라“

바로 이때 밖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여닫이문이 스르륵 열리면서

누가 들어서는데 놀랍게도 아버님의 고향 친구이신 민 기식 어른이

아니신가?  들어서시며 걸걸하게 한 말씀 하신다. 

“부자간에 무신 이바구가 그래 기노 씨끄러버 잘 수가 있나?

진짜 술 좋아하는 사람 옆방에 놓고 술 못하는 느그 아배한테

이기 뭐 하는 짓이고 거----! 아깝다 아까바“


3부끝--4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