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촌의 글밭 - 詩.書.畵/南村先生 詩書

수필-소갈비에 양주두병 먹고도 스님인가요 - 4편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06. 12. 4. 19:08

 

이 병기는 놀라 벌떡 일어서며 넙죽 큰절을 올리고는

“어른께서 왼 일로 여기에 계시는지요?”

“어 본시 거래를 할 때는 증인이 필요한기라 내사 마 증인 서 줄라꼬    3일전부터 와 있었능기라”

“그렇다면 제가 여기 오는 것을 미리 알고 계셨단 말입니까?!

“암 1년 전에 이 장면 하나도 안 빼고 봤제”


민 기식어른 아버지와는 어릴 때부터 한동네서 담하나 두고 같이 자란 정말이지 竹馬故友다 1945년경 그분의 나이 25세 때 甑山道(증산도)라는 道를 닦기 시작했는데 아버지와는 길이 달랐으나 수시로 만나 진리에 대한 道談을 나누었던가 보다 동네에서는 漢學에서부터 易學까지 공부가 대단히 깊고 오랜 수행 생활로 앞일을 훤히 내다 본다하여

동네의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으레 물어 보곤 했는데

매우 겸손하시고 소탈하시며 다 알고 있는 것 같은데도

아는 체 하시는 법이 없어 이 병기도 존경하는 분이다. 

더구나 도를 닦으면서도 아버지처럼 출가하신 것이 아니라

가정에 충실하고 있다는 점이 더욱 존경하는 요소이기도 했다.

“이 땡초 ! 30년 굶었던 술 하룻저녁에 다 마셨군. 

어디 견딜 만하신가?” “음 나는 괜찮네”

“다 늙어서 평생 지은 빚 갚느라꼬 고생이 많네 그려”

두 분끼리만 있을 때는 애칭으로 이 땡초/민 도사 하고 부른다.

“니도 해도 너무 했제 아무리 원한이 깊다 해도 독한 양주를

한 홉 짜리 물 컵으로 엥기는 사람이 어데 있드노

그라고 수행하는 중한테는 死藥(사약)이라는 돼지갈비를 3인분이나 묵으라 카는기.....!

그렇다고 술 한 방울 고기 한 점 안남기고 다 묵어버리는

느그 아배도 똑같다“   ”정말 괜찮으실까요?

이 병기는 제가 한 일이면서도 걱정이 되어 묻는다.

“암 문제가 있다면 30년 수행 헛것이제 니는 그 세계를

모를 끼지마는 느그 아배 술 취한 것 같으냐?”

대저 저녁 11시경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그 자세가 추호의

흐트러짐이 없고 말 한마디 흐트러짐이 없다.  정말 기적이

눈앞에 전개 되고 있다고 밖에는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없다.

“문제는 병기 네 녀석이 느그 아배 말대로 옛날의 원한

인자는 모도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능기 문젠 기라”


이 말씀에 이 병기는 고개만 숙이고 말이 없다. 

두 분의 말씀이 이어진다. “불가에서는 술,고기를 금하고 있는데  인자 계율을 어긴 게 내사 맘에 걸리는데!”

“불가에서 행자들에게 술, 고기를 금하였던 이유는

술을 먹어 취하다 보면 온갖 죄를 범하게 되어 있고

고기를 먹다가 그 맛에 취하다 보면 드디어 칼을 들고 살생을 하게 되는 고로 금 했다네 지금 내가 행한 행동은 술을 먹어도 취하지 아니 하였고 고기를 먹어도 그 맛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으니

어찌 계율을 어겼다고 하겠는가?

 

술 먹는 거 자체가 죄라면 속세에 술을 먹는 모든 사람들이 죄인이란 말인가? 아니지 술을 먹고도 자신을 자제 할 줄 안다면 술도

그저 통상적으로 먹는 밥과 무엇이 다르며

고기를 먹되 생명 죽이는 것을 오락으로 하는 낚시나 사냥을

즐기지 않는다면 어찌 그것이 먹는 행위 자체가 죄라 하겠는가?

오늘 내가 행한 것이 내 자신에게는 30년 동안 술 고기 안 먹고

닦아온 공부 이상으로 또한 큰 공부가 되었으니

이 녀석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지!“


“좋은 말씀 자네야 말로 내가 만난 스님들 중에 참으로 진보된

행자 일세 그려 술 고기를 30년 동안이나 참는 것도 공부이고

이제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먹는 것 또한

큰 수행공부라”

“여보게 땡초 그렇다면 자네가 공부하기 위해서 사회생활 즉 속세를 버렸는데 그 俗世야 말로 道를 닦는 최대의 場이라고 생각을

바꿔볼 생각은 없는가 그 말 일세”

“허 허 이제 나에게 환속을 하라는 말을 하고 있군”

“도를 닦는다고 하면 보통 속세를 떠나 산속에 은거함을

  생각하는데 그러나 그것만이 도 닦는 것이 아닌 기라

첫째는 

도를 닦는다 하는 것은 자기 成熟 行僞(성숙 행위)라

정의 할 수 있능기라 자기 성숙은 天命的이며 宿命的이라

인간이 수수만년 윤회를 거듭 하는 것도

자기성숙 (靈的 進化)때문인 거고

그 靈的 進化를 위하여 인생을 살고 새로운 악업을 지어 내고

현실 사회라고 하는 것은 죄로서 먹고 사는 사회이니 만큼

산다는 것 자체가 바로 惡業과 善業을 연속적으로 쌓아가는

과정이며 현생에 지은 악업의 인과로 來生(내생)에 지독한 고통을 당하지만 그 지독한 고통 속에서 아픈 만큼 영혼이 성숙되어

가는 것이다. 이것을 증산도에서는 熬(볶을오)道라 하는 것이 라네

 

둘째로

왜 영혼은 성숙을 향한 대장정을 떠나야만 하는가 하면 우주는

자기의 존재를 영원히 유지(永生)하기 위하여 만유를 끝없이 성숙 시켜 나가는 기라. 人間이 生과 死라는 2가지 형태로 윤회를 거듭하는 것도 永生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형태이네.

삶이 극에 달하면 죽고 죽음이 극에 달하면 탄생하는 거야.


셋째로

참다운 자기 성숙의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채우는 일과 비우는 일인데 - 달이 차고 가득차면 다시 기울고 책을 많이 보고 사회 경험을 쌓고 그 끝에 모두 버리면 한 소식 듣는 게지. 빈자는 채우는 공부를 하여야 하고 채운 자는 비우는 공부를 할 것이야.  채우지 못 한자가 마음을 비웠다는 말을 감히 할 수 없고 비우지 못 한자가 참다운 도의 공부에 들어 갈수가 없는

거 아이가? (讀書 = 채우는 공부, 禪 = 비우는 공부)


넷째로 

참다운 도를 닦는 자세는 俗世와 산속에 구애됨이 없이 지공무사한

마음가짐 이어야 가능하다고 나는 배웠네.

속세는 음 적인 공부 장소요 , 산속은 양적인 공부 장소라

산속에 들어가 깊은 참선 중에 진리의 본 경계를 見成하고

속세에 들어가 처절한 생활고 속에서 삶의 본 경계를 見成하는

그런 사고방식이라야 언제 어디서라도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내가 俗世를 볼 때

家家 如 法堂이요, 處處 如 道場이며, 事事 如 話頭요 ,

萬人이 스승이요 , 頭頭 物物이 모두 공부의 재료임을 알아 속세

속에서 대도를 깨우쳐야 하는 것이라고 증산도에서

우리 큰 스승님께 배웠네.“


민 기식 어른은 마치 오늘을 위해서 오랫동안 준비 했던 것처럼

구구절절 이치에 들어맞는 말씀으로 강변을 하시는데

혜암은 지그시 눈을 감고 듣고 있고 이 병기는 초롱초롱

눈을 부릅뜨고 한마디도 놓치지 않는다. 

“나는 자네가 30년 동안 그 불가에서 불도를 닦으면서 살생을 하지 말라하고 고기를 금하여 온 것과 속세에서의 모든 욕망을

버리고 오직 참선에만 열중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자네에게

미안하지만 반론을 제기 해보겠네.


내가 공부하여 깨닫기로는

하늘은 인간을 陰과 陽이라는 두 質料로 길러내고

하늘은 인간을 밤과 낮이라는 두 얼굴로 길러내고

하늘은 인간을 罰과 賞이라는 두 報償으로 길러내고

하늘은 인간을 善과 惡이라는 두 法으로 길러 내능기라


그런 하늘과 땅에서 온 인간의 마음도 당연히 善心과 惡心을 太極으로 함께 갖고 있으며 인생의 그때 상황에 따라 혹 선하게 행하고

혹 악하게도 행하능기 어찌 할 수 없는 진리 인기라.

불가 에서는 살생을 하지 말라하고 도둑질 하지 말라 하면서

어떻게 밥은 먹고 사는가?


논에서 자라는 벼가 자기 자손을 퍼트리기 위하여 쌀을 만드는데 사람들은 당연한 것처럼 강탈하여 밥을 지어 먹는 것은 살생과 도둑질 아니고 무엇 인고 그리고 그렇게 얻은 쌀로 어린자식들과

굶주려 쓰러지는 자들의 배를 채워 살려 낸다.


닭이 자손을 퍼트리기 위하여 알을 낳으면 인간들은 당연한 것처럼 강탈하여 어린 자식에게 먹이고 가난하고 헐벗은 자의 배를 채운다


소가 자기 새끼 먹이려고 젖을 생산하면 사람이 달려들어 젖까지 짜다가 사람의 자식들에게 먹이고 가난한 자들을 구호한다.


벌들이 겨울을 준비하기 위하여 여름 내내 죽 을 힘을 다하여 꿀을 모으는데 그것까지 인간들은 훔쳐내어 먹어버리고 그 자리에 설탕물이나 넣어준다.  닭과 소와 벼와 벌들에게 있어 인간들은 어떤 무리인가?


그리고 양계장에서 알을 꺼내오고 목장에서 소의 젖을 짜고 논에서

농부가 벼를 베고 양봉장의 벌통에서 꿀을 채취하는

행위가 과연 어떤 행위인가? 도둑질 아니던가?

여기에서 채취된 달걀과 우유와 쌀과 벌꿀을 저 아프리카에 기아로

죽어가는 인간에게 먹여서 살려내는 행위는 또 무엇인가?


선과 악의 문제는 우주가 相剋적 요소와 相生적 요소로서 운영 될 수밖에 없는 양면성을 말하기 좋아하는 자들이 구분지어

규명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제비가 잠자리를 잡는 것은 상극적 행동이요

새끼들에게 먹이는 행위는 상생적 행동인 것이며

사람이 알과 쌀과 우유와 꿀을 채취하는 행위는 相剋的 요소며

그것으로 난민 구제를 하는 것은 相生的 요소인 것이니 만유가

상극적 마음과 상생적 마음이 반드시 太極으로 함께 존재 할 때

우주가 경영되어 나가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먹고 산다는 것 자체가 죄로서 먹고 사는 것이라 나는 배웠네.

 

각종 종교에서는 극단적인 선을 숭배하고 악을 증오하지만

삼라만상 그 어느 것도 필요 없는데도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보네

必要惡 必要善이란 말이 부정 할 수없는 우주 진리라네

거기에 대한 나의 견해를 말해보면 사람의 본성이란?

無極과 太極과 皇極의 3극작용을 거듭하는데

 다 비워버리면 無極상태요 (- 상태)

 평상심은 太極상태요 (+ - 상태)

 行心을 皇極상태이다 (+ 상태)

성선설과 성악설을 주장하지만 이는 일부분만 본 것이요

공 자리의 경계를 최상의 경지라 하지만 이 또한 일부를 본 것이야

천지 만유가 三極과 陰陽과 五行으로 이뤄지는데

그 경계에서 탄생된 인간 또한 그 모습 그대로라 할 수 있능기라. 

인류의 生長과정을 거치면서 3극을 따로 떼어 연구하여 왔는데

無極의 자리를 道家가 無爲思想으로 표현했고

太極의 자리를 佛家에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 표현했고

皇極의 자리를 儒家에서 存心養生 執中貴一로 표현했능기라

4부끝--5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