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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설과 서 삼신신앙 흔적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07. 1. 8. 00:19

東夷 - 6. '설'과 '서' 그리고 삼신신앙의 흔적
<설, 서>와 관련하여 <설날, 서울, 서낭당>의 어원을 추정해 보겠다.


'설날'의 어원에 대해서 말이 많다.
'낯설다, 설다'라는 말의 어근인 '설'에서 그 어원을 찾아, 설날이 "새해에 대한 낯설음"과 "아직 익숙하지 않은 날"이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설날은 묵은 해에서 분리되어 가는 전이 과정으로, 아직 완전히 새해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익숙하지 못한, 새해로 통합되어 가는 낯설은 그러한 단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처음 가보는 곳, 처음 만나는 사람은 낯선 곳이며 낯선 사람이라서, 설은 새해라는 정신적-문화적 시간의 충격이 커서 '설다'라는 의미로 이름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또, 설날은 '선날' 즉 "개시"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연유한 것으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선날'이 연음화 되어 '설날'로 변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삼가다", "사리다"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한다. 이 설은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신일이란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뜻인데, 이는 완전히 새로운 시간 질서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여 설날의 어원을 추정한다.



'설익다'에서 유래했다고 하기도 하고, 설날이 겨울이라서 눈을 볼 수 있어서 '설(雪)날'이라고 불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수광의 '여지승람'을 인용하여 '서럽다'에서 연유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뿐만 아니라, 나이를 댈 때 사용하는 '살'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 "설이 드는 달"이라고 하여 '섣달(설날 -> 섣달, 술가락 -> 숟가락, 설날을 옛날에는 12월에도 쇴었던 적이 있다.)'의 어원까지 추정하기도 한다.



東夷의 생활풍속 중에 하나인 '농악(?)'을 살펴 보자!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 중에서 상쇠(上쇠), 상장구(上장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꽹과리를 다루는 사람들 중에 가장 으뜸되는 사람을 가리켜 상쇠라고 부르고, 상장구 역시 같은 의미다.



농악이라는 말은 원각사의 협률사라는 단체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하기도 하고, '오청'이라는 일본인 학자가 '조선의 연중행사'라는 책에서 처음(1931년) 썼었던 데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농악의 원래 명칭은 굿, 두레굿, 매구, 풍장, 풍물, 풍물놀이 등이었다고 한다.



농악의 원래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농악은 단순히 농사와 관련된 노동음악이 아니다. 물론, 농사도 유관하지만 그것은 일부분이었을 뿐이며, 농악은 동이의 모든 일상 생활에서 쓰였던 음악이었다. '-굿'이나 '풍-'에서 알 수 있듯이 농악은 풍류도나 무당과 관련이 깊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농악을 공연하는 계기나 방법에 따라 나누어 보면
<당산굿, 마당밟이, 걸립굿, 두레굿, 판굿 등등>으로 불리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일상 생활에 뿌리깊이 들어와 함께 숨쉬고 있는 농악은, 특정인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 모두가 무당(동이)이라는 증거이다. 지금 현재, 인정 받지 못하고 있는 직업 중에 하나인 무당이 옛날에는(동이시절에는), 어느 특정한 사람들의 직업이 아니라 우리민족 모두의 직업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농악에서 상쇠를 우리말로 '설쇠'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설장구, 설북, 설소고라는 것도 있다. 곧, 같은 악기(꽹과리, 장구, 북, 소고 등등)를 다루는 무리들 중에서, 가장 악기를 잘 다루고 연륜까지 깊어 무리들을 이끌 수 있는 우두머리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또 남사당패에서는 으뜸장구수(설장구)를 "고(?高)장구님"이라고 부른다.



즉, '설'은 <으뜸, 높다, 처음, 달통하다, 우두머리, 앞서다 등등>의 뜻을 가진 순우리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정된 농악에만 등장하는 '설'을 '설날'의 어원과 관련하여 설명하는 것은 너무 지엽적이고 보편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했듯이 농악은 우리들의 일상과 아주 밀접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고, 그러한 농악에 등장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설날의 어원을 추정하는데 있어서, <설쇠, 설장고 설북 설소고 등등>은 필연적인 관계에 있다고 생각된다.



설날은 원일(元日), 원단(元旦), 정조(正朝), 세수(歲首), 세초(歲初), 세시(歲時), 연두(年頭), 연시(年始)등의 한자어로도 불린다. '설(설쇠)'의 의미인 "으뜸, 처음"과 일치한다. 곧, 설날은
<일년(새해)의 첫날(으뜸날)>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우리의 언어나 문화, 역사가 언제 어떻게 단절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고 있지만, 그 (단절되고 잊혀진 현재의) 우리의 언어나 문화의 근저를 잘 살펴보면 잊혀진 우리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럼, 이제 서울과 서낭당의 어원에 대해서 알아보자!



서울은 서라벌 혹은 서벌에서 유래했다는 게 거의 정설로 굳어졌다. 나도 이 견해에 동의한다.



'울'은 <울타리, 우리(가축의 축사), 우리(준말로 '울'로 쓰임. 울엄마, we)>라는 용래에서 처럼 <지역, 경계, 영토, 자신을 기준(중심)으로 한 지역>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벌'도
<매우 넓고 평평한 땅>의 의미로서 도시(首都)가 들어 설 수 있는 넓은 지역을 의미한다. 따라서, 울과 벌은 서로 뜻이 통하는 단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의 어원이 서벌(京)이라는 것에 동의 하지만, 벌이 울로 '음운변화'했다는 것에는 동의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그 뜻이 통하는 두 단어가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교체되었다는 것으로서, 울이 벌을 대체했다는 말이다. 혹은, 당시에 서울과 서벌이 동시에 쓰였을 수도 있다. 아뭏든, 분명한 것은 ㅂ이 탈락하고 ㅓ가 ㅜ로 변한게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에도, 우리말인 울과 벌이 쓰이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서'의 뜻은 무엇인가? 솔직히, 서의 어원(뜻)을 밝히는 것은 더 어렵고 복잡한 문제이다.



그리고, '라'의 의미에 대해서는... '라'는 태양이라는 뜻으로, 신라는 '새로운 태양'이라는 뜻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또, '나라(國)'라는 뜻이라고 하기도 한다. 난 어느 게 맞는지 확실히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태양'이라는 뜻과 '나라'라는 뜻이 모두
<라>의 의미라고 한다면, 원래의 의미는 태양이고 나라는 의미가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라의 의미가 태양이라는 주장은 신빙성이 적은 것 또한 사실이다.



'라'와 관련하여 신라와 비슷한 경우로서, '가라'를 <가락, 가야>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그 '라'와 '야'는 같은 단어가 음운변화한 것은 아니라고 보인다. 라와 야가 서로 의미가 통해서 혼용했을 수도 있지만, 서울과 서벌의 경우처럼 서로 다른 단어였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야(?gaya)는 가이아(Gaia)와 어딘지 모르게 닮아 보인다. 현재, 북인도에는 '-가야'라는 지명이 몇 있다.



이 글에서는 주로 '서'에 대해서만 탐구해 보도록 하겠다. 서나벌, 서라벌 또는 서벌은 신라와 동의어이다. (전에도 계속 얘기했지만, 고대국가는 도시(京)국가가 기본이라는 것을 상기하기를 바란다.) 원래는 서나벌, 서라벌 혹은 서벌이라 했던 것을 후세에 신라라고 했다는 것이다.



신라의 어원에 대해서도, <시라, 시로, 사로, 사라, 실라, 실라벌, 서라벌, 서나벌, 사례벌, 서벌 등등>이 신라와 같은 말이라고 한다. 또, 신라를 불교와 관련시켜 신라가 "불국토"라는 의미라고 하기도 한다. 실제로 인도에는
<시라 혹은 실라벌>이라는 나라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불교가 인도에서 발생해서 중국을 거쳐 또는 직접 사국으로 전래되었다는, 우리가 배운대로만 그렇게 알고 있다면, 이 문제는 이해하기 힘들어 진다. 불교와 풍류도의 관계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가 있어야 한다. 기독교의 천주교에 대해서 개신교가 일어 난 것과 같은 의미로서, 불교는 신선도(풍류도, 동이의 종교)에 대한 개혁종교로 볼 수 있다. => 상호 대립적인 의미라기 보다는, 변질되고 왜곡되어 몰락의 길을 걷고 있던 동이종교의 부흥(부활, 복본, 온고지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게 옳을 것이다.}



이 처럼, 여러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서'는 <시, 사, 실>로 혼용해서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그 근원이 '서'인지 또는 <시, 사, 실>인지 확언할 수는 없지만, 서로 같은 뜻을 가진 말들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는 셋(3, 三)이다. 셋은 현재에도 실생활에서 <서, 서이, 세, 셋, 사(흘),석(삼) 등등>으로 쓰이고 있다. 셋(三)이라는 숫자가 우리문화에 있어서 매우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럼, 그 서(셋, 三)는 무엇인가? 바로 <삼신(三神)>을 말한다. 곧, 서벌(서울)은 '삼신의 땅(도시, 나라)'을 의미하는 것이다. 서가
<새롭다, 밝다, 으뜸 등등>의 의미로 해석되는 것과 일치한다.



삼신은 일신(一神, 알, 태양)의 '자기 변화(작용, 표현)'로서, 삼신도 (작은, 아들) 태양이므로 밝고 으뜸이며 새로운 것이다.



여기서, 三은 <1, 2, 3, 4 ...>의 3이나 3等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三神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삼신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동물적인 인간'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영적인 인간'을 의미한다. '영적인 인간'이란
<깨달음을 얻은 자, 깨달음을 얻을 자>를 말하는 것으로서 모든 인류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동물적인 인간'이란 <자기가 '영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자, 진리에 대해 무지한 자 또는 진리를 무시하는 자>를 가리킨다. 곧, 영적이지 않은 인간은 없다는 말이다. '동물적인 인간'이라는 것은 그러한 존재가 따로이 있는 게 아니라, 진리를 배척하고 진리에서 멀어지려고 하는 '자각하지 못하는 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정신적인 상태를 비유해서 일컫는 말일 뿐이다. 모든 인간은 존재 자체로서 '영적인 인간'인 것이다. 그리고, 그 영적인 인간이 바로 삼신을 말하는 것이다.



삼신인 사람은 3等이 아니다. 태양이 으뜸이듯이 그의 아들인 '사람'도 으뜸인 존재이다. 삼신은 (동물적인) 인간의 우두머리(깨달음을 이룬 자, 왕중의 왕, 동물적인 인간이 영적인 인강으로 거듭 남)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삼신의 의미가 왜곡되어 나중에는, 무당(중개자, 왕, 단군, 신선 등등)만이 삼신을 의미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또, 후대의 무지한 자들은 삼신을 환인, 환웅, 단군의 세 분(불교의 삼존불도 같은 맥락이다)을 가리킨다고 말하고, 우상숭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 정도로 사람들이 무지하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동이는 사라진 거나 다를 바가 없었다. 이상을 실현한 사람을 보지 말고 그 사람이 이루었던 이상만을 바라 보아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고 그 사람(조상)을 바라 봄으로써 우상숭배(조상숭배)의 악습을 만들 게 된 것이다. 공경과 (우상)숭배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분명한 것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와 관련하여 어떤 인물의 이상을 본 받고 싶다면, 그 이상만을 바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청출어람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우상에 빠지면, 그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그늘에서 벗어 날 수 없는 것이다. 청출어람하기가 쉽지 않고 큰 인물 밑에서 큰 인물이 나기 어려운 게 그런 까닭이다.



삼신은 결코 <세개의 신> 또는 <세번째 혹은 3等의 신>의 의미가 아니다. 一神이 스스로 <천(영), 지(육), 인(혼)>으로 변화 작용하는 것을 가리켜 삼신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곧, 삼신이 일신이고 일신이 삼신인 것이다. 삼위일체 또는 삼신일체라는 말은 그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유일신사상과 애니미즘(다신사상)이 서로 상관 없는, 배치되는 신앙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의 일신은 唯一神이고 삼신은 多神인 것이다. 즉, 신은 유일신이자 다신인
것이다. 따라서, 삼은 <세개, 세번째, 3等>의 의미가 아니라 '으뜸'이라는 뜻이다.



{천, 지, 인 중의 지는 만물을 가리킨다. 곧 만물도 일신의 변화 작용이므로 애니미즘도 그렇게 바라보아야 한다. 만물도 일신의 분신(?)인 것이다.}



새롭다는 것은, 모습이 바뀜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인 <불변(不變)>을 의미한다. 불변이란 항상 순수함이 유지되어 더럽혀지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보편적으로 물질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모습이 낡아지고 때가 끼게 마련이다.(열역학 제2법칙) 그런데,
<새롭다는 것(불변)>은 항상 지금 만들어진 것 처럼, 낡지 않고 때도 끼지 않아 매순간 창조되는 것과 같음을 의미한다. 그 불변하는 것이 바로 태양(알)이라는 것이며, 태양은 항상 새로운 것이다. 세상에 불변하는 것은 유일하게 태양 밖에는 없다. 그리고, 그 태양이
<모든 것>이다. 그리고 변하는 것은 태양의 짝이자 집(家)인 물질이다. 사실, 물질도 생멸이 있는 것이 아니라 태양에 의해 그 모습이 바뀌는 것일 뿐이다. 곧, 물질의 생멸은 태양(心, 마움 => 마음)에 의해 좌우(태극, 마리)되는 것이며 생과 멸은 둘이 아닌 하나인 것이다. 낡거나 때가 끼지 않고, 그 알이 항상 변함 없이 작용하는(빛을 발하는) 것을 가리켜, 삼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서가 새롭다는 의미를 지닌다는 것은, 서의 불변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제, 삼신을 순우리말로 '서'라고 불렀다는 것을 알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서낭당도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낭당의 어원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지만, 삼신(三神, 서)에서 나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 민족에게 '三(3)'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와 삼신신앙이 우리 생활에 끼쳤다고 생각되는 영향에 대해서 다들 잘 알고 있다(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막상 "삼신신앙의 흔적이 남아 있는가?"라고 물으면 말문이 막힐 것이다. 고작 대답한다는 게
<임신과 출산에 관련하여 삼신할머니, 절의 삼신각(삼성각) 등등>이다.



삼신신앙의 흔적 치고는 너무 왜소하다는 생각이 안드는가? 풍류도의 흔적이 산속으로만 들어가 버리고 속세에서는 볼 수 없다는 게 이상하지 않는가?



그 삼신신앙의 흔적이 바로 <서낭堂>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각 마을(고을)마다, 마을 어귀나 고개마루에 원뿔 모양의 돌무더기와 서낭목(당산나무) 또는 장승을 심어놓은 게 삼신신앙의 흔적이 아니면 무엇이라는 말인가? 그 돌무더기는 피라밋이나 지그랏과 관련되고 서낭목은 '세계수'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우리 민족이 동이이며 그 동이가 무당을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 동이의 종교가 신선도(풍류도, 태양숭배교, 삼신신앙 등등)라고 밝혔었다. 그 구성원(동이, 우리민족) 모두가 무당이고 신선이라면, 전국 방방곡곡 마을마다 사람(동이)이 사는 곳이라면 그 신선도의 흔적이 남아 있었야 하지 않겠는가!



그 삼신신앙의 흔적, 신선도의 흔적이 바로 서낭당이라는 말이다. 나는 서낭당의 풍습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 풍습에 대해서 조사하고 연구하면 틀림없이 삼신신앙과 관련된다는 것이 밝혀질 것이다.



그 풍습 중에, <서낭당을 지날 때에 누석단(돌무더기)에 돌 세개와 솔개비를 얹어 놓고 침을 세번 뱉은 다음 왼쪽 발꿈치로 땅을 세번 구른다>는 것이 있다. 또 어느 지역에서는 서낭신이 세명(?)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세명의 서낭신과 관련하여 연극이 만들어지기도 했었다. 곧, 세명의 서낭신은 삼신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하회탈과 관련한 전설을 들어보자!



<이 마을을 지키는 서낭신은 여신인 '무진생(戊辰生) 서낭님'으로 17세 처녀인 의성 김씨라고도 하고, 일설에는 15세에 과부가 된 서낭신으로 동네 삼신의 며느리 신이라고도 전한다. 이 서낭신에게 해마다 음력 정월 보름과 4월 초파일에 올리는 평상제는 동제(洞祭) 또는 당제 (堂祭)라고 부르고, 이와는 달리 임시 대제로 지내는 별신굿은 대체로 10년에 한번씩 거행된 것이다. 이 별신굿은 그 기능으로 보아 이른바 마을굿으로서 서낭신에 대한 큰 제사이며 탈놀
이는 오신(娛神)행사로서 별신굿의 부분에 속한다.>



서낭신이 삼신을 가리킨다는 것이 아직도 받아 들여지지 않는가? 서낭신은 순우리말과 한자어가 혼합되어 만들어진 단어이다. 당연히 원래 단어는 순 우리말인 '서낭 혹은 서'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낭'이다.



'낭'은 郎 또는 娘이라는 한자어에서 연유했을 가능성도 있다. 곧, 서낭은 <서(삼, 삼신) + 낭(?존칭)>이라고 볼 수 있다. 원래는 <알
=> (한)알님> 처럼 <서 또는 서님>이었는데, 후대로 내려 오면서 낭(郎, 娘)을 붙여 부르게 되었을 수도 있다. 우리말의 습관 중에, 순우리말과 한자어를 혼합하여 사용하는 습속이 있는데, 이 경우도 같은 경우로 볼 수 있다. 하회탈의 전설에서 보이듯이, 삼신이나 서낭신이 모두 사람(무당, 특히 여자)으로 비쳐지고 있는 점이 그러하다. 그래서, 낭은 郎 보다는 娘이 더 맞는 것 같아 보인다.



삼신할머니의 경우도 그러하다. 삼신할미가 출산과 관련되어 있다고 전해지는 것은 '심청전'이나 '여인왕국전설'에서 보이듯이, 동이의 태교와 관련된
<龍 만들기, 王者 만들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인다. 그리고, 박수무당(남자무당) 보다는 무당(여자무당)이 많거나 서낭신이 여자로 묘사되는 것을 보아서도 낭은 娘일 가능성이 높다.



또, 낭이 <-랑(나랑너랑, 우리랑, 아빠랑 등등)>일 수도 있다. 곧, 서낭은 서랑이라는 말이다. 서랑은 <삼(신)이 함께하는, 삼(신)이 내려와 있는>의 의미로 해석된다. 그리고, '서낭신'은 '역전앞'과 같은 용례로 볼 수도 있다.



낭이 어떤 뜻인지 확언하기 힘들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서'가 삼신(三神)을 가리키는 우리말이라는 사실이다.



서가 <사(흘)>로도 발음되는 경우도 있는 것을 보아, 새(新)도 서에서 기원했다고 보인다. 즉, 새는 '사 + 이'로 볼 수 있다. 또 이렇게 놓고 보면, '서이(서 + 이)'인 세(셋)도 새(新)와 같은 단어라는 유추도 가능해진다. 우리말
<三, 서, 셋>이 '새롭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다시 증명된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서가 먼저인지 새가 먼저인지 확언할 수는 없다. 다만, 둘이 같은 단어라는 것이다.



한단고기 - 태백일사의 삼신오제본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三은 新이 되고 新은 白이 되며 白은 神이 되며 神은 高가 되니 高는 頭가 되는 고로
백두산이라 칭한다.>



'새롭다'의 어원과 관련하여, '고맙다'와 '아름답다'라는 말의 어원도 함께 추정해 볼 수 있다.



'새롭다'는 <샐(새 + ㄹ) + 옵다>이고 '고맙다'는 <곰(고 + ㅁ) + 압다, 고마 + ㅂ다>로 볼수 있다는 것이다. 또 '아름답다'는
<알(아 + ㄹ) + 음 + 답다>로 볼 수 있다.



<옵다, 압다(ㅂ다), (음)답다>는 '-과 같다, - 처럼'의 뜻이다. 또, <새, 고ㅁ(ㅏ), 알>은 神을 나타내는 순우리말로 해석 된다.



새는 세(三)와 같은 말이라고 했고, 세는 서와 같은 말로서 三神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즉 '새'는 (삼)신을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새롭다>는 <三神답다>라는 뜻으로서, 항상 순수함을 잃지 않는 모습을 가리키는 단어로 보인다.



새롭다는 것은 무엇인가? <일신 일일신 우일신(日新 日日新 又日新)>을 말함이다. 많은 이들이 이 말을 오해하여 받아들이고 있는데,
<날마다(항상, 매순간) 새롭다>라는 말은 모습이 바뀌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불변을 말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새로움은 교체가 아니라 깨긋함을 말하는 것이다. 새로움의 한 예를 들자면... '초심'을 잃지 않고 항상 순수함을 유지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새롭다는 것은, 거울에 묻는 때를 닦아내어 거울이 항상 깨끗히 빛나게 하는 것이지, 헌 거울을 버리고 다른 거울로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게 결코 아니다.



<어떤 이가 처음에 자신의 거룩하고 숭고한 이상(初心)에 의해 어떤 봉사단체를 만들었다. 그는 행복했고 기뻤다. 그의 손길이 닿기를 바라는 이들이 넘쳐날 수록 그는 행복했다. 자신이 세웠던 이상이 옳았다는 것을 매순간
확인할 수 있었고, 미약해 보이던 자신이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 가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더욱 필요한 존재가 되어 갈수록 자신의 존재에
감사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 환경이 변화하고 상황들도 달라진다. 어느 정도 그의 이상이 이루어지자, 그는 초심을 잃어버리고 방황을
시작한다. 그러다가, 결국 부패와 부정을 저지르게 되고 멸망한다. 멸망에 이르는 순간까지 그 자신은 타락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순간부터 초심이 흐려지고 그 흐려진 초심을 새로이 하지 않은 결과이다.>



이것은 우리가 가끔 뉴스에서 볼 수 있는 안타까운 장면들이다. 부정부패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곳, 있어서는 안될 곳에서 가끔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온다. 그 사건의 배후에는 이런 이치가 담겨있는 것이다. 그 기획(초심)이 아무리 훌륭하고 거룩하다고 할지라도 초심을 잃어 버리면, 그것은 쓰레기(쭉정이)에 불과하게 된다. 그 초심을 매순간 상기하는 것을
<새로이 하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버릇이 되어 더 이상 외부에 의해 흔들리지 않고 완전하게 매순간 저절로 새로운 것을 <새, 서>라고 하는 것이다.



고(ㅁ, 마)는 수메르어의 GODD(?고드)나 영어의 God와 근원을 같이 하는 단어로 보인다. 또 '마고'의 '고'도 같은 '고'로 보인다. 그 '고마'는 地神으로 해석되고 있는데, 고마가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다. 나는 그 '고마'가 어머니神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아뭏든,
<고맙다>는 <神답다>라는 말이다. <(당신은) 어머니(神) 처럼 은혜롭다, (당신은) 어머니神 처럼 사랑을 준다>라는 의미이다.



일본(日本)을 일본인들은 <니혼, 니뽄>으로, 神을 <가(神風, 가미가제), 고(神戶, 고베)>로 발음한다. 그와 관련하여, <님(존칭
접미사)>이 태양신이라는 주장은 옳다. <니(日) + 마(神), 고(또는 가, ?) + 마(神)>로서 니마, 가마(고마)인 것이다. 그 니마, 가마가
<님, 감(곰)>으로 축약된 것이다.



문제는 '고(가)'가 무슨 뜻이냐는 것이다. '님'은 <니 + 마>로서, '니'는 태양신이 아닌 태양이라는 뜻이다. 물론 태양이 곧 태양신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엄격히(?) 따져서 '니'는 신이라는 뜻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고(가)'도
<어떤>을 가리키는 것이지 <어떤 神>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후대에 '고'가 직접 神을 가리키는 의미로 변했다고 하더라도, 원래는 神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영어의 갇(God)이 '고'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옳다. 그런데, 그 God도 원래는 神이 아니라 어떤(神)을 가리켰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곰(감)을 地神으로 보는 사람도 있으니, 고는 땅(地)이라는 뜻인가? 그런데,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가이아(Gaia 또는 Ge - 개마고원의 개와 같다)나 마고는 모두 여성적인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또 가이아는 대지(지구)의 여신을 가리킨다. 기독교에서, 神을 아버지(아빠, Abba)라 부르고 있는데, 그와 대응해서 곰은 어머니를 가리킨다. 그러나, 아버지신과 어머니신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신은 아버지이자 어머니이다. 一神의 모습에 따라 아버지 혹은 어머니로 호칭되고 있는 것이다.



마고나 가이아 둘다, 유일신이자 모든 신들의 어머니로 그려지고 있다. 또, 만물의 창조주로 그려지고 있다. 마고의 마는 그 자체로서 어머니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마고가 여성으로 그려지는 것은 '고'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고'가 天神이나 日神에 대비한 地神으로 그려지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고가 '땅'의 의미인 것은 맞지만 하늘(天)에 상대하는 '땅'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가맣다'나 '검다'가 곰(감)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고(가)는 대체로 <가맣다, 여성, 땅, 지구 등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최치원이 '난랑비 서문'에서 풍류도를
<현묘지도(玄妙之道)>라고 말하였다. 그 玄이 '가맣다'이다. 이미 알고 있듯이, 우리 민족은 태양신을 숭배하는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그 종교가 풍류도, 풍월도, 신선도 등등의 이름으로 불렸었다. 그 풍류도는 밝음을 숭상하는 '太白의 道'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풍류도를 <현묘지도>라고 했으면서, 또 <태백의 도>라고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아닌가? 白을 숭상하면서 玄도 숭상하다니... 그럼, 白과 玄을 각각 숭상하는 두개의 풍류도나 종파가 존재했었다는 말인가?



지역이나 교리, 사람들에 따라서 종파가 여럿 존재했을 수는 있지만, 밝음과 어두움을 따로이 숭배하는 종파의 존재는 부인해도 된다. 만약, 따로이 숭배하는 종파가 있었다면 그것은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종교가 아니라 두개의 다른 종교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밝음과 어두움을 동시에 숭배했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모순되어 보이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물론, 음양론에 익숙한 동양인들은 쉽게 받아 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밝음이 양이고 어둠이 음이니, 白을 숭상함은 陽神을 숭배함이요, 玄을 숭상함은 陰神을 숭배함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 양신이 해(日, 태양 또는 하늘, 天)神이고 음신이 달(月 또는 땅, 地)신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설명은 음양의 개념정리가 잘못 되어 있는 것으로 부터 시작 된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음양을 <天地, 山川, 산-바다, 水火, 日月, 남녀, 白玄
등등>으로 표현하면서 이해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이다. 음양은 <확장 - 수축, + -, 上下, 左右 등등>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天地, 日月, 빛과 어둠 등등은 서로 상대되는 개념이 아니다. 天과 地는 삼극의 두 극으로서 개념이고 月은 日의 한 종류일 뿐이다. 또 빛은 존재하는 것이고 어둠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빛과 어둠이 둘 다 존재하면서 서로 상대하거나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太陽(日)은 존재하지만 太陰(月이 아니다.)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태양이 양이고 달이 음이라면, 태양은 빛이고 달은 어둠이라는 말인가? 태양도 빛이고 달도 빛인 것이다. 따라서, 太陰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태음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면 그것은 太虛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럼, 풍류도도 배화교 처럼 빛은 善神이고 어둠은 惡神이어서 서로 대립하는 이원론의 종교였는가? 고마(玄, 地)를 섬기면서 동시에 니마(白, 日)를 섬겼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것은... 一神과 삼신(天地人)은 별개가 아니라 體와 用의 관계에 있으며 三神一體 또는 三位日體로서 三一神이라 한다. 그 一神을 '알'이라 부르고 삼신은 '서'라고 부른다. 또, 삼신으로서의 모습을 '고(가)'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때의 삼신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설수 있게 만드는 또는 만들어 가는 개념으로서의 삼신, 즉 地(코스모스)의 개념으로 보인다. 결국, 니마나 고마는 따로이 있는 神이 아니라, 같은 一神의 체와 용의 관계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冥想과 관련해서... 흐트러진 힘은 소음이고 집중된 힘은 침묵이라고 하고, 그 침묵에서 신과 직접 대면할 수 있다고 한다. (신과 직접 대면한다는 말은, 肉我가 아닌 眞我를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명상의 뜻이 어둠을 생각하는 것인가? 아니면, 어둠 속에서 생각하는 것인가? 명상이란, 어둠 속에서 빛을 보는 것 또는 빛과 만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 어둠, 침묵이 '고'로서 혼돈이나 카오스의 개념과 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곧, 고는 玄으로서 black이 아닌 dark의 뜻이다. 神話들은 그 혼돈에서 우주만물이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결국, 고는 一神(日神)이 천지(우주)를 창조하고 만물을 생육하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로 해석되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연(自然, nature)의 순우리말로 여겨진다.



곧, 天神이 地神이며 사람인 것이다. 우리가 막연히 받아 들이고 있는 전지전능한 유일신으로서의 개념이 天神(一神, 태양, 알)이며 그 알이 작용하는 모습이 地神(고, 가)이며 그가 땅위로 강림하는 것이 사람(三神, 서)인 것이다.



세계의 각 종교에 따라 唯一神을 남성적(아버지)으로 표현하거나 여성적(어머니)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혹자는 이를 잘못 이해하여, 태극(음양, 음신과 양신)의 개념을 도입하여 해석하거나 유일신의 性이 무엇인가를 골똘히 궁리하기도 한다. 그래서, 유일신을 부를때 아버지라 불러야 하니 어머니로 불러야 하니, 神은 性이 없는 中性이므로 아버지나 어머니를 붙이지 말고 그냥 '하느님'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옛 시조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라는 표현에서도 보이듯이, 사람과 만물의 근원인 一神을 가리켜서는 남성적인(태양)인 표현을, 그들을 育成하는 自然으로서의 一神을 가리켜서는 여성적인(대지의 여신) 표현을 하고 있다.



(唯)一神의 本性을 가리켜서는 太陽(알)神이라 부르고, 一神의 작용을 가리켜서는 자연(고, 가)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또, 一神의 궁극적인 자기표현을 가리켜 三神(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고맙다와 관련하여 <곱다>라는 단어도 있다. 곱다는 <고 + ㅂ다>로서 <神(自然)답다>는 말이다. 곧, 神 처럼 예쁘다(pretty, 자연스러움)는 뜻으로서 인위적(不調和)이지 않음을 일컫는 말이다.



{참고 : '마'를 다른 뜻으로 풀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마'는 神을 의미하는 우리말들 중에 하나이다. '마'는 후에 어머니라는 뜻으로 확장 되었다. '마'에서 파생된 단어로는 마움(음)과 마리(머리)가 있다. 또, 엄마, 마마 등등이 있다. '마'는 지휘감독자 또는 건축자라는 뜻이다.

=> 머리와 마음으로 일컬어지는 '지도 원리(Directive Principle, 하느님, 神)'를 M(영어의 알파벳 M이 아니다. 가림토에도 M이 보인다.)으로 표기하고 무(MOOH 또는 마)라고 불렀다.}



아(ㄹ)는 '알'로서, 태양신을 말하는 것이다. <아름답다>는 <태양신답다>라는 말로서, 태양신 처럼 밝고 눈부시게 빛나는 대상을 수식하던 단어이다. '곱다'는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수수함을, '아름답다'는 화려함을 말하는 것이다.



<~(당신은)이 아름답다, ~(당신은)이 새롭다, ~(당신은)이 고맙다>라는 말들은 상대방이 신이라는 말이 아니라, 신과 같다는 말이다.
혹자는, '(당신이) 고맙다'는 '당신은 고마(神)다.'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 ㅂ다>는 <-처럼, - 같은>의 뜻이다. 따라서, '당신이 고맙다'는 '당신은 고마와 같다'이다. 즉, '당신이 고맙다'는 '당신은 어머니神이 자식(만물, 사람)에게 (조건없는 무한한) 사랑(은혜)을 주듯이 나에게 그런 사랑(은혜)을 베풀었다.'는 뜻이다. 사실, 어머니神 처럼 그런 사랑을 베푸는 존재는 神이라 불릴 수 있다. 아니! 그 이전에, 사람은 신의 아들이므로 신이다.



{분명히, 신의 아들도 신이다. 그러나, 신과 신의 아들은 다른 것이다. 신의 아들을 가리켜서 신(창조주, 유일신)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이비로 일컬어지는 종교들에서 가르치는 교리중에 하나가, '창조주(알, 서, 고마, 니마 등등)가 사람으로 내려왔다'는 것이다. 만약 그 교리대로, 창조주가 사람의 모습으로 지상에 출현한다면 이 우주는 그 순간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유일신(창조주)이 사람의 모습으로 어쩌고 저쩌고 하는 종교단체가 있다면 그들은 100% 사이비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설'과 '서'의 관계를 추정해 보도록 하겠다.



앞에서 설이 <으뜸, 높다, 처음, 달통하다, 우두머리, 앞서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또, 서는 <三, 새롭다, 밝다, 으뜸>이라고
말했다. 설은 <설날, 설쇠, 설장고 등등>에서, 서는 <서울, 서라벌, 서낭당>에서 그렇게 말했었다.



나는 '설'과 '서'가 같은 뜻을 근원으로 하는 단어들로서, '알'과 '아'의 관계와 같다고 생각한다.



'알(태양)'이 먼저인지 '아'가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둘이 같은 뜻에서 연유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아'에서 파생된 단어들 중에 <아침, 아사달, 아시 등등>이 있고 그 뜻은 모두 아침(朝)과 관계된다고 한다. 아침은 당연히 해(태양)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마찬가지로, 설과 서도 같은 관계라고 생각한다.



설과 서는 서로 뜻이 상통할 수 있다. 설이 '으뜸, 높다, 우두머리, 처음, 앞서다'의 뜻을 가지고 있고 서도 역시 '으뜸'의 뜻을 가지고 있다.
<높다, 우두머리, 처음, 앞서다>는 '으뜸'에 갈음 된다. 또, 설이 '달통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고 서 역시 그러하다. 서(삼신)는 <達人, (先)生, (先)覺>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바리데기가 삼신이 되었다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들은 覺(득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럼, 설에 <三, 새롭다, 밝다>라는 뜻이 있는가? 서에 설의 뜻이 모두 들어 있듯이, 설에도 서의 뜻이 모두 들어 있는가가 문제이다. 안타깝지만, 현재 우리말에서 설이 서의 뜻(3, 새롭다, 밝다)을 가지고 있는 예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내가 식견이 좁아서 발견하지 못한 것일 뿐이라는 것을! 분명히 설에 三神(서)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좀 억지를 부리자면, 설(으뜸, 높다, 우두머리)은 뾰족함을 말하는 것이다. 곧, 피라밋과 같은 삼각이나 그 꼭대기(왕관)를 가리키는 말로 볼 수 있다. 그 뾰족함을 나타내는 피라밋이나 지그랏트가 삼각의 형상이므로, 설도 三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 피라밋(金字塔)은 서(삼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땅(사각)을 딛고 하늘 높이 우뚝(삼각) 서서 크게 빛나는 사람(삼신, 그리스도)'을 상징화한 것이 피라밋이다. 따라서, 그 피라밋이나 피라밋의 꼭대기를 나타내는 설도
<三, 밝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 : 이집트 기자 피라밋의 원래 모습은 지금과 다르다. 四面이 모두 석회암(?)으로 매끄럽게 처리된 사각뿔의 형태였으며, 그 꼭대기는 황금색(왕관을 상징)으로 되어 있었다. 13(?14)세기 이집트에 대지진이 발생하기 전의 피라밋은 멀리서 보았을때, 햇빛을 반사하여 백색의 밝은 빛을 발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가히, 삼위태백이라고 할만하다.}



우리말에 '서슬이 퍼렇다'는 말이 있다. 서슬은 오벨리스크나 劍과 같이 뾰족함(날카로움)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 서슬은 <서 + 슬, 서 +
설>로 분석할 수 있다. 슬기(지혜)라는 말의 '슬'도 역시 설에서 온 것으로 추측된다. 서나 설, 둘다 스나 슬로 쓰였을 수 있다. 3을 나타내는 영어 'three'에서
<서, 설, 스, 슬>의 관계를 어렴풋이 짐작해 볼 수 있다.



또, 서라벌의 실라나 실라벌에서 서와 설의 관계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제주도에 설과 서의 관계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지명이 있다. '설엉, 설낭, 설랑'은 서귀포의 <'재재기오름' 남쪽 바닷가를 지칭하는데 보목동 261번지 서쪽 '배개(포구)' 사이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정확한 어원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설'은 바닷가 암반지대를 일컫는 성창 혹은 바위나 돌무더기가 얼기설기 얽혀 있는 지대를 일컫는 '설덕'을 의미한다.>라고 덧붙여 말하고 있다.



결국, '설엉, 설낭, 설랑'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고 단지 추정만 하고 있다는 말이다.



'설엉, 설낭, 설랑'은 서낭당의 '서낭'과 같은 말로 추정된다. <돌무더기가 얼기설기 얽혀 있는 지대>가 어떤 모습인지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것은 단순히 바닷가의 암반지대를 가리키는 게 아니다. 만약, 바닷가의 암반지대를 일컫는 말이라면 제주도의 거의 모든 해안(모래나 벌이 없는 해안)을 모두 다 '설엉, 설낭, 설랑'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설엉, 설낭, 설랑'은 특정한 한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이다. 바닷가의 암반지대를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그 곳에 서낭당의 돌무더기와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에 불려진 지명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게 아니라면, 서낭당의 돌무더기와 비슷한 지형 때문에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다.



앞에서, 서낭의 '낭'이 '-이 함께하는(-랑)'이나 娘('님'과 같은 존칭)의 의미를 가졌을 것이라고 추정했었다. 또, 설과 서가 같은 말이라는 논리를 폈었다. 그리고, 서낭당의 풍속 중에 '원뿔모양의 돌무더기'가 있는데, 그 돌무더기가 피라밋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했었다.



곧, 피라밋은 <삼신이 내려 와 있는 사람, 삼신이 함께하는 사람, 삼신인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서낭당의 돌무더기도 <삼신이 함께하는 사람, 삼신인 사람>이라는 뜻이 되어 사람 또는 삼신을 상징하는 삼신신앙의 표상이 된다. 서낭당의 돌무더기를 설랑이라고 부르던 풍속(삼신신앙)이 내려오면서, 그와 비슷한 모양이나 지형을 가리켜
<설랑 => 설낭 => 서낭>이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있다. 그 흔적이 제주도의 '설엉, 설낭, 설랑'이라고 생각된다.



또, <낯설다, 설다>에서 설이 '새롭다, 처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설이 서와 마찬가지로 새롭다는 뜻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처음 시작하는 새로운 날'을 설날이라 이름 붙인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서다, 삼가다, 사리다 등등>도 어원을 서나 설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다'는 삼신(서, 설)을 뜻하는 피라밋이나 사람이 서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볼 수 있으며, 삼가다나 사리다는 초심으로 돌아가려는 몸짓(새로워지려는 행위, 삼신다워지려는 행위)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仙王堂(또는 山王堂) 또는 城隍堂에서 서낭당이 유래되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가 城隍堂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공인되고 있다. 그러나, 성황당은 결코 아니다. 그 반대의 경우라면, 가능성은 있다.



서낭당은 성황당(城隍堂)으로만 기록되지 않았다. 문헌에는 선왕당(仙王堂)으로도 기록되어 있고, 지방에 따라 천왕당(天王堂), 골매기 서황, 서황(서 + 皇?), 국시당, 국수당이라 불렸다. 仙王, 山王, 天王은 단군왕검이나 환웅천왕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이고, 그 단군왕검과 환웅천왕은 三神의 대표적인 예일 뿐이다. 따라서, 현재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순우리말로 되어 있는 서낭당이 그 原典이라 할 수 있다.

{仙王은 神仙들의 왕, 즉 동이의 왕을 말한다. 산은 피라밋(神殿)을 말하고 그 곳에 거하는 신선들의 왕이 山王이다.}



설과 서 중에 어떤 것이 먼저 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둘은 <알, 아> 처럼 같은 뜻을 가진 단어들이라는 것이다. 삼신을 숭배했던 동이에게서 삼신신앙의 흔적이 발견되는 것은 당연하다. '설날, 서울, 서낭당'은 그 희미한 흔적들 중에 하나이다.

출처 : 눈에 보이는 것이 다 진실은 아니다,
글쓴이 : sadko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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