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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배달국 나라 이름 뜻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07. 1. 8. 00:22

우리나라의 현재 명칭은 대한민국(大韓民國).

 

여기서 "대(大)"는 크다는 의미이고, "민국(民國)"의 뜻은 국민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라는 의미이므로, 우리의 국명의 실제적인 의미는

 "한(韓)"이다.

 

대한제국은 황제 고종에 의해서 통치되었기 때문에 "대한제국(帝國)"이

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 "한(韓)"의 기원은 무엇일까? 


   물론,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가 있다.

 

우리는 큰 나라라는 의미인데, 무엇이 큰 나라인가?

또한, 이것은 고대(古代)의 우리를 의미하는 국가를 의미하므로,

고대에서부터 그 의미를 찾아본다.


  우리나라는 삼국사기에 의하면 초기
환인(한인)시대, 환웅(한웅)

시대, 단군조선시대로 시작하는데, 환인시대이 국명이 바로 "한국"이

고, 이때 통치자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손(天孫)임을 강조하여,

그 통치자는 "한인=하느님(하늘=한=크다)"이라고 칭하였다.

 

따라서, 통치자는 스스로를 하늘의 자손(天子)라고 칭하였다.

이러한 것은 우리만의 현상이 아니고, 역사가 유구한 어느 민족에게나

 있는 현상이다.  

 

한인시대를 이은 것이 환웅의 "배달국"이다.

이러한 사실은 삼국유사등에 잘 소개되어 있다.

 

우리민족을 "배달민족"이라고 일컫는 것은 여기서 기원한다.

"배달(倍達)"이란 당시는 어떻게 발음했는지는 잘 모르나,

"밝다=배달"이라는 이두식표현이다.

 

따라서, 배달국이란, 광명의 국가라는 뜻이고,

그래서 배달국의 백성인 우리민족이 바로 배달민족이 된 것이다.

 

통치자계급인 환웅은 "하늘왕=천황"이니, 환웅천황이 되는 것이다.

여러곳에서도 말했지만, 환웅이라는 것은 한 사람이 아니라,

한국대통령과 같은 일반명사일뿐이다.

 

단지, 우리학계는 한 사람으로 여기고, 신화적 시대로만 몰아붙이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삼국유사에 잘 나와 있는 내용이다. 


   이 시대를 잇는 것이 단군조선이다.

 

"조선(朝鮮)"이란 이두문자이다.

 

"여진(女眞)족”만해도 그렇다.

즉, 한자의 음을 빌려 호칭을 적어놓은 것이다.

이 여진이라는 말이 숙신(肅愼), 조선(朝鮮), 주신(珠申)과

똑같은 뜻이라는 사실 알고 있는가?

 

그 말은 “밝은 온누리”를 뜻하는 말로써 마찬가지로 박달(밝은 들),

 배달과 같은 뜻이다.

 

단군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배달임금"이라는 뜻이다.

단군왕검이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사실은 "잘못된 개천절기념식"부분

을 참조하기를 바란다.


  그 다음이 부여인데, "부여"는 보금자리, 터전을 의미하는

우리말이며 부여란 고조선이 국명을 바꾼 나라이다.

 

"옥저"라는 말은 "기름진 땅이라는 뜻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자세히 다룰 내용이나, 다소 복잡하여 시간이

좀 걸리겠습니다.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
"고구려"인데, 신채호선생의 학설에

의하면 고구려는 만주어로 "가우리"이고, "가우"는 우리말로

"가운데(中)"를 의미하고, "리"는 "땅. 나라를 의미"하여,

 

고구려,

즉 "가우리"란 가운데에 자리한 나라,

"중국(中國)"과 같은 의미이다.

 

다른 설에서는 고구려의 근본은 금와왕에서 나왔는데,

(금와왕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은 삼국유사에 잘 나와 있지만)

"금와(金蝸)"란 금빛  개구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개구리"라는 말을

표현한 것이 고구려 즉, 고구리. 고구려의 국명이라고 하기도 한다.

 

옥편을 찾아보면 "려(麗)"는 "옛나라이름 리"라고 나온다.

이러한 한자(漢字)가 국명으로 사용한 나라는 고구려가 처음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구려의 기원이 주몽이 아니라, "고진"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주장은 다소 논리적으로 모순이 된다고 보이고,

"중국"을 의미하는 "가우리"가 옳다고 보인다.

 

앞서 말했듯이 호국불교의 상징인 황룡사9층탑에서 고구려와 백제를

통칭하여 "중화(中華)"라고 일컫었던 것으로 보아 "가우리=중국"이

올바른 의미인 것으로 생각된다. 

 


  고구려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
"백제"이다.

 

백제는 일설에는 백 명이 강을 건넜다고 하여, "백제(百濟)"라고

한다지만, 어떠한 "백명"인지는 알려져 있지가 않다.

단지 한자의 뜻을 풀이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유력한 이론으로는 백제가 아니라,
"맥제"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여기서 "맥(貊)"이란 우리민족의 한 갈래로 산동반도일대에 살았다.

"맥이(貊夷)"라고도 하며, 음식중에 "맥적"이라는 것이 맥이족이

해 먹던 고기음식을 말한다.

 

대륙의 동쪽 산동지방에 맥이족이 살았는데, 산동(山東)지방은

"제(濟)"라고 일컫는 지방으로 "제(濟)지방에 자리잡은

 맥족(貊族)".

 

또는 "맥(貊)족이 세운 제나라"을 의미하여 "맥제" 가 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맥(貊)"이라는 글자에서 "백(百)"자만이 남았지만,

역시 "맥제"라고 읽어야 옳다는 주장이 있다.

 

백제가 산동반도를 중심으로 존재했다는 사실은 여러 곳에서 설명한

바 있다.


   고구려유민을 바탕으로 산동반도에서 건국한
"치청"의 이정기가

처음에 나라이름을 "제(濟)"라고 칭한 것도 이 제나라 지방에서

건국했기 때문이다.

 

또한, 백제를 세운 온조와 비류가 고구려에서 갈라진 "부여"씨였다.

따라서, 백제 성왕때 나라를 중흥하고자 하며 국명을 바꾼 것이

"남부여", 즉, 남쪽에서 일어난 부여라는 의미가 여기에 있다.

 

물론, 고구려와 백제 모두 부여에서 갈라져 온 나라이다. 

 

 


  
"신라"는 새로운 땅이라는 의미로, 몽골어로 "황하유역"을 일컫는

말이 "실라"이다.

 

황하의 물이 넘쳐 생긴 넒은 기름지대를 일컫는 말이다.

앞에서 주장했다시피 신라는 처음에는 황하유역에서 시작한 국가였다. 

 

 

 


  
"가야"란 말은 물과 땅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가야라는 말은

인도북동부의 살던 우리 민족이 이동하여 세운나라이름이라는 설이다.


  고구려멸망후 대조영이 세운 "대진국(大辰國)"이 있다. 이를

"발해"라고도 하는데, 이는 발해가 발해만에 위치했다고 하여

당나라에서 붙인 이름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진국(대진국)"이라는 정식 명칭을 사용하여야 한다.

 

"발해"라는 말자체가 "대진국"을 그들의 지방정권에 불과한 것으로

폄하시키기 위해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또다른 주장으로 고구려는 "고씨(高氏)"가 세운 나라이고,

원래 나라이름은 "구려","구리","고리","고려"였다는 설이 있다.

 

따라서, 고씨가 세운 "고려"라는 의미로 "고구려"라고 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대진국"은 대씨(大氏)인 대조영이 세운 나라로 원래는 "진(辰)"이라는

 나라인데, 앞에 시조의 성을 따서 "대진(大辰)"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조선을 "이씨조선"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논리인 것같아서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신라를 김신라이니, 고려를 "왕고려"하지는

 않지만, 금나라의 뒤를 이른 후금이 즉 신라를 이었다고 표방한

것으로 "김(金)나라"인 점을 보면 마냥 빗나간 이야기만은

아닌 것도 같다.

 

 

 

< 고구리(高句麗)의 명칭 연구 >

 

     오재성씨의 의견(http://www.coo2.net)정리

 

   우리는 주몽이 건국하고 보장왕대 패망한 고구리(高句麗)의 이름을 하나로만

인식하고 있으나, 여러 가지 다른 이름으로 불려 졌다는 사실이 사서에 기록

되어 있다.  

 

고구리(高句麗)의 발음도 우리는 '고구려'로 발음하고 있으나 사서(삼국지)에서는

 '고구리'로 발음 하라고 되어있으며, 옥편에서도 '고구리'로 발음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기권(史記)권 6에서도 리음리(麗音離)라 하여 분명히 '리'로 발음하라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지, 고리 즉, 고구려 : 三國志,  離卽高句麗)

   사서에서 고구리(高句麗) 이외 다른표현이 있음을 알아야 고구리 역사를

바로 밝힐 수 있는 것이다. (동음이자화 등) .

 

신라(新羅)는 처음부터 신라로 했다는 기록은 없고 鷄林(계림), 斯盧(사로),

新盧(신로)로 부르다가 307년에 다시 신라로 쓰기 시작했다고 하였으니

(이상 江淮新羅 즉, 사로新羅) 新羅만을 따진다면 307년 이후만이 신라역사겠으나

鷄林史 新盧史 斯盧史 역사를 신라역사에 포함하여 기록하고 있으니 북부여(고

리)역사를 고구려역사에 포함하는 당연한 것이 아닌가 ?

   그런데 北夫餘(북夫餘 : 고리)의 解慕漱(해모수)가 天帝라 하면서 건국한때가

 BC239년으로 되어 있으니 이것이 고구려 건국연대로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지금은 이 시대를 위만의 시대로만 정립하고 있으나 위만은 마한의 箕準(기

준 : 삼국지30)의 자리를 찬탈하여 조선이라 칭하였으니,高句麗의 역사를 정립함

에 있어 이 시대 民族史를 정립해야 할 것이다.

< 사서별로 이름을 검토해 보면 >

     - 고구리(高句麗) : 삼국지(三國志)권30, 위서(魏書)권100, 북사(北史)권94,

남사(南史)권79, 김부식 삼국사기

     - 구리(句麗) : 삼국지(三國志)권30, 남사(南史)권79, 김부식 삼국사기잡지(雜志)6

     - 하구리(下句麗) : 삼국지(三國志)30
     - 고구리(高句麗) : 후한서(後漢書)권85, 송서(宋書)권97, 양서(梁書)권54
     - 구리(句驪) : 후한서(後漢書)85, 양서(梁書)권54, 한서(漢書)권26
     - 하구리(下句驪) : 한서(漢書)권99, 양서(梁書)권54
     - 고리(高麗) : 위서, 북사, 구당서, 당서(魏書, 北史, 舊唐書, 唐書)
     - 고리(高驪) : 송서(宋書)
     - 고리( 離) : 삼국지(三國志)
     - 고리( 離) : 양서(梁書)
     - 구여(句餘) : 사기(史記)
     - 색리(索離) : 북사(北史)
     - 맥이(貊耳) : 후한서(後漢書)
     - 구루(溝 ) : 삼국지(三國志)
     - 요동국(遼東國) : 진서지리지(晉書地理志)
     - 평주목(平州牧) : 양서(梁書)권54

    위와 같이 여러가지 문자로 기록하고 있는데 문자는 달라도 하나의 국가였음을 염두에 두어야 사서를 바르게 볼 수 있다.

   - 구여음자각이부득위 사기(句餘音字各異不得爲 史記)31-4,
   - 구루자구려(溝 者句驪) : 구루자구려 삼국지(溝 者句麗 三國志)30-26,
   - 구려일명맥이 후한서(句驪一名貊耳 後漢書)85,
   - 고리즉고구려 삼국지( 離卽高句驪 三國志)30-24.
   - 북옥저일명구루 삼국지(北沃沮一名溝  三國志)

< 해모수(解慕漱)시대의 국호는 무엇인가 ? >

- 고리( 離,  離 ; 高句麗)이다 -
삼국지에는 색리(索離) 또는 탁리( 離)로
삼국유사에는 북부여(北夫餘)
광개토대왕비에는 북부여(北夫餘)
위서(魏書)에서는 부여(夫餘)라고 하였다.
양서(梁書)에서는 고리( 離)
북사(北史)에서는 부여(夫餘)
신구당서(新舊唐書)에 부여(夫餘)라 하였다


  북부여, 부여, 고리(北夫餘, 夫餘,  離) 등으로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당서와

김부식 삼국사기에서 '해모수의 부여(夫餘)'는 고구려역사(高句麗歷史)라 하였다
(보장왕 27년(668년) '고려비기일부급구백년(高麗秘記日不及九百年)')

   장안(長安) 중심의 두번째 사서인 한서(漢書)권26에
'무제시치조선예맥구려만이(武帝時置朝鮮濊貊句驪蠻夷)'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분명히 구리(句驪)는 해모수의 부여(夫餘)를 이른 말이라 할 수 있다.

   고구리역사를 바르게 연구하려면 고구려와 북부여의 여러가지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모든 기록이 고구려역사로 대입하여 보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어떤기록으로 되었던 고구리역사가 BC239-AD668년내에 있다면 하나의 고구리

로 정립해야 마땅한 것이다.  

 

북부여(北夫餘)를 "고리"로 불렀다고 하니 북부여와 고구리(高句麗:高麗)는

모두 고구리 역사인 것이다.

-끝-

출처 : 눈에 보이는 것이 다 진실은 아니다,
글쓴이 : sadko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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