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시간이 만든 소설, 공간이 만든 소설 (2004-01-01)
소설이 될 만한 뭔가가 떠오르긴 했는데,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할 때 참고할 만한 몇 가지 유형을 생각해 보자.다 그런 건 아니지만, 발상이나 소재가 그 안에 이미 소설의 완성된 꼴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소재나 발상에 따라 더 잘 어울리는 소설의 유형이 있다는 뜻이지, 어떤 소재는 반드시 어떤 유형으로 써야 한다는 무슨 규칙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소설을 이루는 두 개의 축은 시간과 공간이다. 시간이 만드는 소설이 있고, 공간이 만드는 소설이 있다. 물론 시간만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나 공간만으로 이루어진 소설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시간과 공간은 존재의 씨줄과 날줄이다. 시간과 공간이 없으면 존재가 없다. 존재한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이 만든 좌표 가운데 어느 한 점을 점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소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조건을 벗어날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유형에 따라, 시간의 흐름이 중요한 소설과 공간의 형상이 중요한 소설을 나눌 수 있다.
시간의 축에 있는 소설적 요소는 움직임, 사건, 기억, 회상 등이다. 이것들이 이야기를 만든다. 모든 이야기는 시간의 산물이다. 시간이 흐르지 않으면 이야기도 멈춘다. 움직임이나 사건, 기억과 회상에 의지하는 이런 소설은 서사 위주의 소설이 되기 쉽다. 사건이 만들어지고 이야기가 형성되려면 인물이 움직여야 한다. 인물이 움직이려면 마땅한 동기가 주어져야 한다. 소설 속에서 인물은 합당한 동기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이른바 리얼리티, 혹은 개연성 확보의 문제이다.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서는 리얼리티나 개연성을 증명해야 할 이유가 없다. 현실 속에서는 성수대교가 무너지기도 하고 중학교 3학년 애가 죽은 엄마 옆에서 6개월 동안 먹고 자기도 한다. 실제로 일어났고, 직접 경험했다고 한 일을 누가 의심하겠는가. 현실의 경험은 개연성을 초월해 있다. 그것은 증명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이야기나 죽은 사람과 6개월 동안 한 방에서 지내는 사람 이야기를 소설로 쓰려고 할 때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사람이 왜 그런 일을 하는지를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실 속에서는 몰라도 소설 속에서는 어떤 시시한 사건도 ‘그냥’ 일어나는 법이 없다. 역설이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 더 소설 같고, 소설이 더 현실 같은 이유이다.
인물을 움직이게 한다? 인물을 움직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극을 주어야 한다.
자극에 대한 반응이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인물이 움직여야 사건이 일어나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가령 누군가에게 편지가 온다고 생각해 보자. 혹은 전화나 전보. 그리고 전해지는 내용이 누군가의 부음이나 사고 소식이라고 가정해 보라. 그걸 전해들은 사람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이것은 아주 흔하고 판에 박힌 하나의 소설 유형이다. 발신자가 있고, 그 발신자는 인물에게 어떤 임무를 부여한다. 이제 인물은 그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어딘가로 이동해야 한다. 이런 식이다. 고향에서 전화가 온다. 소식을 전해 주는 사람은 친척 가운데 한 사람이다.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삼촌이나 할아버지, 또는 마을 사람 가운데 누군가가 죽었거나 위독하다고 알려온다. 그 사람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고향으로 내려올 것을 요구한다. 임무가 주어진 것이다. 우리의 주인공은 고민에 빠진다. 고민의 내용은 고향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이다. 그런데 그는 왜 고민을 하는가. 가야 하는데,
가지 못할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갈 수 없는 사정이 가야 한다는 당위와 싸운다. 싸움은 치열할수록 좋다. 이제 우리의 인물은 그 싸움이 진행되는 사이사이에 고향에 갈 수 없는 사연의 내막을 독자에게 노출한다. 회상과 기억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사연은 기차나 버스를 타고 내려가는 순간까지 분산되어 소개된다. 마침내 우리의 주인공은 고민과 갈등 끝에 고향에 이르고 문제를 해결하든가 화해를 이끌어내든가 한다. 그렇게 하여 임무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에 있던 자리로 돌아오면서 소설이 끝난다.
사건과 이야기를 중심으로 짜여진 소설들은 흔히 이런 패턴을 모방하거나 변용한다. 이와는 달리 공간 자체가 말을 하는 소설이 있다. 이런 소설에서는, 물론 여기서도 인물과 사건과 이야기가 없을 수 없지만, 분위기와 이미지와 상징과 묘사가 상대적으로 중요한 요소가 된다. 가령 버스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묘사함으로써 일정한 소설적 효과를 거두고 있는 소설들은, 그 버스 안을 세계, 또는 사회의 축소로 인식시킨다. 교실 안의 학생들을 등장시킨 소설도 마찬가지다. 그럴 때 버스나 교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세계, 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이루고 있는 특정 집단, 혹은 신분을 대표한다. 이른바 전형적인 인물.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은 우의성을 띄며 상징의 빛을 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터널 빠져나오는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터널의 우의성을 이해한다. 이런 소설에서는 공간에 놓인 소도구들 하나도 그냥 놓이지 않는다.
소파가 있다고 하자. 시간이 만드는 소설(이야기가 중요한 소설)에서는 소파는 단순히 사람이 앉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또 그래도 상관없다. 그러나 공간이 역할을 하고 묘사가 중요한 소설에서는 소파가 그저 단순한 도구일 수 없다. 도구 이상이다. 그것은 낡은 소파, 붉은 소파, 우단 소파 등의 배치를 통해 고유한 상징성을 확보하게 된다. 권태를 나타내기도 하고, 기다림을 표시하기도 하고, 열정을 표현하기도 하고, 폐기 처분 직전의 처지를 상징하기도 할 것이다. 안개나 비도 그냥 내리지 않는다. 현실 속에서는 어떤지 모르지만 소설 속에서는 내릴 만할 때 내리고 표현할 이미지가 분명할 때 내린다. 그것들이 만드는 분위기와 이미지가 소설의 몸을 이룬다. 때때로 공간이 곧 캐릭터라고 말해지는 것은 이런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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