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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소설 창작 방법론8 / 이승우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07. 3. 1. 10:43

8. 누구에게 말하게 할 것인가 - 화자의 문제. (2003-10-01)

 


다음 질문에 대답해 보라. 목포가 가까운가, 수원이 가까운가. 대답할 수 있는가? 목포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고 수원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말할 수 없다고 답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목포라고 대답한 사람은 왜 목포가 수원보다 가깝다고 생각한 것일까? 수원이라고 답한 사람은? 그것은 그가 서 있는 위치 때문이다. 자기가 어디에 위치해 있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예컨대 광주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목포는 수원보다 가깝다. 그러나 서울이나 인천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수원이 목포보다 가깝다. 기준은 언제나 그가 서 있는 자리이다.


다시,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자. 여기에 방이 있고 문이 있다. 그리고 누군가 방 안쪽에서 방 바깥쪽으로 움직인다. 그럴 때 그는 (방에서 밖으로) 걸어나오는가, 걸어나가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당신(말하는 사람)이 어디에 위치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당신이 방 안에 있다면 ‘그가 걸어나간다’고 말할 것이다. 당신이 방 밖에 있다면 ‘그가 걸어나온다’고 말할 것이다. 말하는 사람이 언제나 기준이다. 그가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알게 되는 것은 그 사실을 전해 주는 사람(말하는 사람)의 입을 통해서이다. 그러니까 움직이는 사람이 있고, 그가 움직이는 걸 본 사람이 있다. 우리는 그(인물)가 어떻게 움직였는지(사건)를 직접 본 것이 아니고, 그걸 직접 보고 전해 주는 사람(화자)의 말을 통해 알게 된다. 말하자면 모든 이야기는 누군가를 통해 말해진 이야기이다.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허구의 이야기는 누군가를 통해 서술된 것이다. 앞에서 예를 든 것처럼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엄밀한 의미에서 사실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역사는 그것을 기술하는 자의 역사이다. 사건의 본질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바라보는 자의 해석이 존재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싸움을 했다. 우리가 그 싸움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그 싸움을 목격한 사람의 서술을 통해서이다. 그런데 그것은 전하는 사람의 욕망과 의도와 입장에 의해 해석되고 재구성된 싸움이지 싸움의 본질은 아니다. 아니, 싸움의 본질이 있는가? 그런 건 없다. 열 명의 화자는 열 개의 싸움을 기술한다. 그것은 말하는 사람의 욕망과 의도와 입장에 의해 해석되고 재구성된 싸움이다. 말하는 사람은 사건을 전하면서 은밀하게, 또는 노골적으로 자신의 욕망과 의도를 집어넣는다. 말하는 사람의 욕망과 의도와 입장에 의해 해석되고 재구성되지 않은 사건이란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떤 사건 이야기를 들을 때 그 사건과 함께 그 사건을 옮기는 사람의 욕망과 의도도 함께 듣는 셈이다. 이것이 소설이다.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지만, 그러나 누군가에 의해 말해진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소설을 쓰려고 할 때, 그러니까 허구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려고 할 때, 먼저 상정해야 하는 것은 누구의 입을 빌려 말할 것인가, 이다. 물론 소설을 쓰는 사람은 작가이다. 그러니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작가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소설을 통해 작가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작가는 직접 말하는 대신 누군가를 내세워 말하게 하고 자신은 그 뒤에 숨는다. 작가는 작품 밖에 있다. 작가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독자 역시 작품 밖에 있다. 작품 안에서, 작가를 대신하여 말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그가 화자이다. 자, 그러니 결정하여야 한다. 누구에게 말하게 할 것인가. 그는 사건에 참여하고 있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일 수도 있고, 사건에 참여하지 않은, 사건 밖의 존재일 수도 있다. 원칙은 없다. 준비된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화자를 선택하면 된다.


사건에 참여하고 있는 등장 인물 가운데 누군가 한 사람을 화자로 선택할 때, 소설은 1인칭 시점이 된다. ‘나는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이 있다고 하자. 여기서 ‘나’는 작가가 아니고, 작가가 만든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작가는 자기가 만든 이야기 속의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주인공이거나 주변 인물인)을 택해 이야기를 대신 하게 한다. 1인칭 시점은 인물-화자의 내면 세계를 드러내는 데 가장 적합하다. 반면에 이야기가 ‘나’의 조건과 시각을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가령 전라도 출신의, 공부는 잘 못 하고 노래는 잘 하는 열두 살짜리 여자아이를 1인칭 화자로 설정했을 때, 소설은 그 아이의 조건과 능력을 벗어난 이야기를 전개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규칙이다. 1인칭 시점은 화자로 선택된 인물의 내면 세계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다는 장점과 화자의 처지와 조건에 제한된다는 약점을 동시에 지니는 시점이다.


화자가 사건 밖에 있다는 것은, 등장 인물로서 사건 속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건 밖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이라고 쓸 수 없다.
화자는 사건에 참여하고 있는 인물들의 이름을 부르거나 그, 또는 그녀라고 호칭한다. 3인칭 시점이다. 3인칭 시점을 택했을 때, 작가는 화자에게 신적인 전지전능을 부여할 수 있다. 말 그대로이다. 화자는 모르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인물들에 대해서든 사건의 진행에 대해서든 묘사할 수 없는 것이 없고 서술할 수 없는 것이 없다.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지만, 모든 인물들을 공평하게 취급해야 하는 이 시점의 특성상 내면의 깊이를 그리는 데는 취약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작가의 지나친 개입은 독자들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반감시킬 수도 있다.


화자가 이야기 바깥에 있되, 신적인 전지전능을 갖는 대신 특정한 인물의 안에 들어가는 시점을 택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작가는 한 인물의 입장이 되어 그가 보고 듣고 생각한 것만을 들려 주게 된다. 효과는 등장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을 내세운 1인칭 시점과 거의 유사하다. 누구에게 말을 하게 할 것인가는 작가의 선택이다. 각각 장점이 있고 단점도 있다. 자신이 구상한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해 줄 수 있는 적임자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일은 그 이야기를 구상한 사람의 몫이다. 작가는 작품 바깥에 있고, 작품에 우선한다.


출처 : 시를 사랑하는 서정마당
글쓴이 : 같은세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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