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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소설 창작 방법론3 / 이승우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07. 3. 1. 10:46

3. 발상에서 소설이 태어난다. (2003년 5월 1일.)



나무는 씨앗에서 태어난다. 식물의 씨앗 속에는 뿌리와 줄기와 잎이, 가능성의 형태로 이미 들어 있다. 씨앗 속의 뿌리가 나무의 뿌리가 되고 씨앗 속의 줄기가 나무의 줄기가 되고 씨앗 속의 잎이 나무의 잎이 된다. 소나무는 소나무 씨에서 나왔기 때문에 소나무이고 잣나무는 잣나무 씨에서 나왔기 때문에 잣나무일 수밖에 없다.
씨는 미래의 나무를 품고 있다. 겨자 씨를 뿌려 놓고 야자수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야자수 씨에서 겨자가 나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자연의 법칙은 그렇게 막무가내가 아니다. 비유하자면 발상은 소설의 씨앗이다. 씨앗이 미래의 나무를 품고 있는 것처럼 발상은 한 편의, 훌륭하거나 시원찮은 작품을 품고 있다. 소설 창작이 자연 법칙에 충실하다고 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자연 법칙에 어긋나지는 않는다.


일기조차도 제 스스로 쓰지 못 하는 아이들이 많다. 그날 경험했던 일 가운데 인상적인 것을 선택해서 쓰는 것이 일기이다. 그런데 무얼 써야 할지 몰라서 자기 엄마에게 물어 보는 아이들이 꽤 많다고 한다. 아이 엄마가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잖느냐, 그걸 써라, 하고 알려 주면
아, 그래, 그걸 써야지, 한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쓸거리를 제공해 주는 그 자상한 어머니의 태도는 바람직한 것일까?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의 글쓰기를 돕고 있는 것이 아니라 치명적으로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쓸 것인가를 찾고 궁리하고 선택하는 것부터가 글쓰기이다. 아니, 그 단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글의 성격과 수준과 성향의 상당 부분이 이 단계, 즉 발상의 단계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발상이 차지하는 비중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그 일기는 아이의 일기가 아니라 아이 엄마의 것이다.


이걸 소설로 쓴다면 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가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소중하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이 세상에 씌어진 모든 좋은 소설들의 작가는 그 순간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한다. 이 세상에 씌어지지 않았거나 씌어졌으되 시원찮은 모든 소설들의 작가는 그 순간을 소중하게 포착하지 못 했거나
아직 그런 순간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물론 과장해서 하는 말이다. 하지만 순전한 과장만은 아니다. 나무를 품고 있지 않은 씨는 없다. 정해진 발상법이 따로 있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모티프를 찾는 방법이 다르고, 또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가 쓴 모든 작품의 발상법이 다 똑같으란 법도 없다.


책을 읽다가 문득 무언가 떠오르기도 하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도중에 이걸 써 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행에서 겪은 어떤 일이 모티프를 제공하기도 하고, 신문 한 귀퉁이에서 읽은 어떤 기사가 그런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영화를 보는 중에, 혹은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보는 중에 그럴 듯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도 있다. 화장실에서, 만원 버스 속에서, 심지어는 꿈에서 깨어난 직후에 그런 단서가 떠오르기도 한다.


우리의 머리 속으로는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매우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스쳐지나가는 생각들은 붙잡아 두지 않으면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영감처럼 떠오른 것들은 또 그만큼 쉽게 잊혀지기도 한다. 뭔가 그럴 듯한 생각이 떠올라서 흡족해했다가 나중에 그걸 되살려 보려고 해도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속상했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아이디어나 자료를 메모해 두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다. 주변에서 보고 느낀 모든 것이 다 소설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주변에서 보고 느낀 것을 썼다고 해서 다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그러나 언제나 어떤 경우에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삶 속에서 착상의 단서를 잡아내는 일이다. 거미줄을 친 거미만이 잠자리를 잡는다. 사물과 현상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호기심, 그리고 지속적인 독서와 사유(나는 그것을 문학적 자장이라고 표현하는데)를 유지하는 사람이 소설의 씨앗을 찾아낸다. 세상의 모든 일이 만만하지 않은 것처럼 소설 역시 만만하지 않다. 좋은 소설을 얻기 위해서는 소설의 자장 밖으로 나가지 말아야 한다. 자장 안에서 놀아야 한다.


20년 동안 소설을 써 온 작가도 좀 오랫동안 소설을 쓰지 않고 있으면 소설 쓰기가 어려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걸 잘 만지면 소설이 되겠구나 싶은 착상이 잘 떠올라 주지 않아 버린다. 그럴 때는 기분이 참담해진다. 그런 참담한 상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소설을 생각하고 소설 쓰기를 계속하는 것이다. 소설을 쓰다 보면, 쓰고 있는 동안 또 다른 발상들이 나를 찾아온다. 소설 쓰기를 계속하는 한 소설은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

 

 

 

출처 : 시를 사랑하는 서정마당
글쓴이 : 같은세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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