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2003년 4월 1일.)
할 말이 있는 사람이 마이크를 잡는다. 할 말이 없는 사람은 마이크를 잡을 이유가 없거니와 실은 잡아서도 안 된다. 할 말이 없는 사람의 마이크는 듣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세상과 인간에 대해, 세상과 인간을 향해 무슨 말인가를 한다는 것이다. 할 말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말을 할 욕구를 느끼지 않고, 따라서 소설을 쓰지 않는다. 강요하는 사람은 없다. 근원적으로 소설가는 자발적인 이야기꾼이다. 누군가 요구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기 때문에, 남들이 듣기를 원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할 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는 소설가가 된다. 어떤 작가는 한 편의 소설을 쓰고 나서, 바로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소설가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런 것이 있어야 한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세상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 소설을 쓰려는 욕구를 느끼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불만과 의혹, 욕망과 의도가 말을 만들고 소설을 쓰게 한다. 이청준은 그것을 복수심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지배와 해방-언어사회학서설3).
소설이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이론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그 거울은 사물을 비추되
거울 자신의 욕망과 의도에 따라 비춘다. 욕망도 의도도 갖고 있지 않은 거울은 아무 것도 비추지 않는다. 그럴 의욕이 없기 때문이고 그럴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소설을 쓰려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거울이 이 세상에 대해 불만과 의혹, 욕망과 의도를 가지고 있는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왜냐하면 소설은, 어떻게 말하든 소설을 쓰는 사람의 세계 해석이고, 그 해석의 뿌리는 그의 욕망과 의도이기 때문이다.
소설을 쓰겠다고 하면서 무얼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이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쓸 것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소설을 쓰겠다는 의욕을 느낄까? 그저 소설가가 되고 싶어서라고 대답할지 모른다. 그러면 그는 왜 소설가가 되고 싶을까? 소설가가 무슨 대단한 명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라는 건 다 안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 소설을 쓰겠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바뀐 말이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니고 소설을 쓰기 때문에, 쓰는 동안 소설가로 불리우는 것이다. 무얼 쓸지 모르겠는 사람은 쓸 것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다. 무얼 써야 할지 모르면서 무언가를 쓰는 것은 할 말도 없으면서 마이크를 잡고 있는 것과 같아서 당사자와 주변을 짜증나게 하기 쉽다.
우선 하려고 하는 말은 절실한 것이어야 한다. 적어도 누군가 들어 주기를 기대한다면, 그런 요청이 결례가 되지 않을 정도의 가치를 가진 것이어야 한다. 여기서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크기나 무게가 아니라 깊이이다. 말을 하는(소설을 쓰는) 사람이 자기가 말하려는(쓰려는) 내용을 얼마나 핍절하고 간절하게 여기고 있는가이다. 자기 자신도 절실하지 않은 이야기,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이야기에 귀기울일 사람은 별로 없다. 아니, 그러기 전에 자기에게 절실하지 않은 내용에 성의가 더해지기 어렵고 그러다 보면 제 꼴을 갖춰 풀려나갈 가능성도 없다고 해야겠다. 그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절실한 것은 어디에 있을까? 다는 아니지만, 그것의 한 처소는 기억이다. 기억은 단순한 과거의 퇴적이 아니고 편집된 과거이다. 편집의 과정에는 잘라내기와 붙여쓰기와 축소와 과장과
오려붙이기가 포함되어 있다. 치명적인 기억은 과장되어 있을 수도 있고 잘라내졌을 수도 있다. 때로는 드러내기가 두려울 수도 있다. 그것은 말할 가치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말할 때, 소설로 쓸 때 신중해지지 않을 사람은 없다.
또한 하려고 하는 말은 구체적인 것이어야 한다. 소설은 영혼이 아니라 육체이다. 이미지가 아니라 물질이다. 아무리 고상한 사상이나 관념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구체를 얻지 못 한다면 소설이 되기 어렵다. 이미지는 시로 족하고 사상은 철학을 만족시킨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그것들, 이미지나 사상,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영혼에 다름 아닌 그것들에 실체를 부여하는 육화(肉化)의 과정이다. 막연한 것, 추상적인 것, 모호한 것,
자기 자신도 아직은 무언지 확실하지 않은 것, 그런 것을 가지고 소설을 시작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써나가다 보면, 지금은 모호하고 뭔지 모르겠지만, 어떤 모양인가가 만들어지겠지, 어떻게 되겠지, 하고 기대하지 말라. 어떻게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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