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說)
이씨 삼자 명자 설(李氏三子名字說)
광릉(廣陵) 이호연(李浩然)이 유사(有司)에 천거되었는데, 《서경(書經)》의 뜻을 잘 알기로 이름이 있었다. 내가 일찍이 서론(緖論)을 듣기를 원하나 이루지 못하였더니, 하루는 와서 내게 말하기를, “내가 세 자식이 있으니 첫째는 지직(之直)인데 자(字)는 백평(伯平)이요, 다음 둘째는 지강(之剛)인데 자는 중잠(仲潛)이요, 다음 셋째는 지유(之柔)인데 자는 숙명(叔明)이니, 이는 성인의 총명을 사모해서이다. 대개 세 가지 덕이라는 것은, 성인이 세상을 무마하고 사물에 응하는 것이 때에 따라 마땅함을 마련하여 백성의 풍속을 황극(皇極)에 끌어 넣는 것이다. 사람이 날 때 하늘에서 품부받아 중(中)과 화(和)의 체용(體用)이 갖추어졌으니, 강충(降衷)이니 유성(綏性)이니 하는 말이 그것이다. 그러나 기품(氣稟)이 처음에 변하고, 더러운 습속이 나중에 몰려들어, 중(中)이 못되고 화(和)가 못되는 지경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성인이 하늘을 이어 극(極)을 세워서 임금으로써 다스리고 스승으로써 가르치니, 이에 삼덕(三德)의 명목이 서서 세도(世道)가 평강(平康)하게 되었고 사람마다 착하게 되었다. 성인이 대체 무엇을 하랴. 또한 바르게 하고 곧게 하여 상도(常道)에 순하게 할 뿐이니, 옷을 늘어뜨리고 앉아서 하는 것이 없어도 다스림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내 큰 자식의 이름을 지직(之直)이라 하고 자를 백평(伯平)이라 하였으니, 요(堯)ㆍ순(舜)의 백성이 되고자 함인데, 이것은 성인이 곧은 것을 화평하고 편안한 세상에 쓴 것이다. 세도(世道)가 차차 떨어져서 백성이 침체하고 후퇴하여 중(中)에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돕고 붙들어주어 그 퇴폐해진 기운을 진작(振作)시켜 중화(中和)로 돌아오게 하고야 마니, 이것은 성인이 강(剛)한 것을 침잠(?潛)한 세상에 쓴 것이다. 그러므로 내 둘째 자식의 이름은 지강(之剛)이라 하고 자는 중잠(中潛)이라 한 것이다. 세도가 올라가 백성이 고명(高明)해져서 중(中)에 지나치는 지라, 이에 적시고 갈고 하여 그 강하고 뻣뻣한 기운을 소모시켜 중화(中和)에 돌아오게 하고야 마니, 이것은 부드러운 것을 고명한 세상에 쓴 것이다. 그러므로 내 끝의 자식의 이름을 지유(之柔)라 하고 자를 숙명(叔明)이라 하였다. 아. 성인이 중(中)을 백성에게 쓴 것이 이와 같으니, 백성이 진실로 중(中)에 돌아온다면, 부모의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벽됨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내 자식을 이름 짓는 데에 반드시 이것으로 한 것은, 장차 세변(世變)을 살피고 성화(聖化)를 사모하여 견묘(?畝) 가운데에서 스스로 즐기려는 것 뿐이니, 호정(戶庭)에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안다는 것이 나를 두고 한 말이다. 청컨대 선생은 설(說)을 지으라.”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진실로 그대가 《서경》을 잘 아는도다. 나는 늙어서 황극(皇極)의 행하는 것과 삼덕(三德)의 총명을 볼 수가 없으나 그대의 아들 세 사람은 모두 훌륭한 바탕이 있으니, 훗날 성취되는 것은 진실로 측량할 수가 없을 것이다. 아버지의 가르침을 폐함이 없는 것이 나의 바램이니, 힘쓸지어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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