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민 가운데 도둑질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 있었는데 아들에게 도둑질에 관련한 모든 기술을 가르쳐주었다. 도둑의 아들도 자기 재간을 자부하고 자기가 아버지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여겼다. 그래서 매번 도둑질할 때마다 반드시 아들이 먼저 들어가고 나중에 나왔으며 자질구레한 것은 버리고 귀중한 물건만 훔쳤다. 귀로는 먼 데서 나는 작은 소리도 듣고 눈으로는 어둠 속에서도 살필 수 있어서 도둑들로부터 기림[譽]을 받았다. 아버지에게 뽐냈다. “내 기술이 아버지 기술과 차이가 없고 게다가 힘은 훨씬 강합니다. 이대로 간다면 무엇인들 못할 게 있겠습니까?” 아버지 도둑이 말하였다. “멀었다. 지혜란 배워서 성취하는 데서 막히고 스스로 터득하는 데서 넉넉하게 된다. 너는 아직 멀었다.” “도둑의 도는 재물을 훔치는 것으로 공을 삼습니다. 나는 늘 아버지보다 공이 배나 많지요. 또 나는 나이가 아직 젊으니 아버지 연세가 되면 당연히 특별한 수단을 갖게 될 것입니다.” “멀었다. 내 기술을 쓰면 겹겹으로 두른 성도 들어갈 수 있고, 몰래 감춘 것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차질이 생기면 재앙이 따른다. 찾을 만한 자취가 없고 임기응변하여 막힘이 없는 경지는 스스로 터득한 바가 있지 않은 사람은 이를 수 없다. 너는 아직 멀었다.” 그러나 아들은 오히려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 밤에 도둑은 아들과 함께 어떤 부잣집을 털러 가서 아들에게 보물창고에 들어가게 하였다. 아들이 한참 탐을 내어 보물을 챙기고 있는데 도둑이 밖에서 문을 닫고 자물쇠를 걸고 소리를 내어서 주인이 듣게끔 하였다. 주인집에서 도둑을 쫓아갔다가 돌아와서 보니 자물쇠가 그대로 잠겨 있었다. 주인이 안으로 들어가자 아들은 창고에서 밖으로 나올 길이 없었다. 손톱으로 긁어서 쥐가 물건을 쏘는 소리를 냈다. 주인이 “쥐가 창고에서 물건을 쏠아대니 쫓아내지 않으면 안 되겠다.” 하고 등불을 켜고 자물쇠를 끌러서 안을 살펴보려고 하였다. 아들이 그 틈에 빠져나와 달아나자 주인집에서 함께 뒤를 쫓았다. 아들은 궁지에 몰려 벗어나지 못할 줄 생각하고 못을 돌아 달아나면서 돌을 집어서 물에 던졌다. 쫓던 사람들이 “도둑이 물에 뛰어 들어갔다.” 하고 못가의 난간을 둘러막고서 잡으려 하였다. 아들은 이러는 틈에 빠져나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를 원망하며 말하였다. “새나 짐승도 오히려 제 새끼를 보호할 줄 아는데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렇게도 몹시 하십니까?” 도둑이 말하였다. “이제 앞으로 너는 마땅히 천하를 홀로 주름잡게 될 것이다. 사람의 기술이란 남에게서 배운 것은 푼수에 한도가 있고 마음에서 터득한 것은 응용이 무궁하다. 하물며 곤궁하고 답답한 상황은 사람의 의지를 견고하게 하고 사람의 인덕을 완숙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냐? 내가 너를 곤궁하게 만든 까닭은 바로 너를 편안하게 하기 위함이고, 내가 너를 함정에 빠뜨린 까닭은 너를 건져주기 위함이었다. 창고에 갇히고 쫓기는 어려움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네가 어찌 쥐가 쏘는 시늉을 하고 돌을 물에 던지는 기묘한 꾀를 낼 수 있었겠느냐? 너는 곤궁에 빠져서 지혜를 짜냈고 변고에 마주쳐서 꾀를 냈다. 의식의 근원이 한번 열리면 다시는 헷갈리지 않을 것이다. 너는 마땅히 천하를 홀로 주름잡게 될 것이다.” 그 뒤 과연 천하에 당하기 어려운 도둑이 되었다. -이하 생략-
民有業盜者, 敎其子盡其術. 盜子亦負其才, 自以爲勝父遠甚. 每行盜, 盜子必先入而後出, 舍輕而取重. 耳能聽遠, 目能察暗, 爲羣盜譽. 誇於父曰, “吾無爽於老子之術, 而強壯過之. 以此而往, 何憂不濟.” 盜曰, “未也. 智窮於學成而裕於自得. 汝猶未也.” 盜子曰, “盜之道, 以得財爲功. 吾於老子功常倍之. 且吾年尙少, 得及老子之年, 當有別樣手段矣.” 盜曰, “未也. 行吾術, 重城可入, 祕藏可探也. 然一有蹉跌, 禍敗隨之. 若夫無形跡之可尋, 應變機而不括, 則非有所自得者不能也. 汝猶未也.” 盜子猶未之念聞. 盜後夜與其子至一富家, 令子入寶藏中. 盜子耽取寶物, 盜闔戶下鑰, 攪使主聞. 主家逐盜返, 視鎖鑰猶故也. 主還內, 盜子在藏中, 無計得出. 以爪搔爬, 作老鼠噬嚙之聲. 主云, “鼠在藏中損物, 不可不去.” 張燈解鑰, 將視之. 盜子脫走, 主家共逐. 盜子窘, 度不能免, 繞池而走, 投石於水. 逐者云, “盜入水中矣.” 遮躝尋捕. 盜子由是得脫歸. 怨其父曰, “禽獸猶知庇子息, 何所負, 相軋乃爾.” 盜曰, “而後乃今汝當獨步天下矣. 凡人之技, 學於人者, 其分有限, 得於心者, 其應無窮. 而况困窮咈鬱能堅人之志而熟人之仁者乎? 吾所以窘汝者, 乃所以安汝也, 吾所以陷汝者, 乃所以拯汝也. 不有入藏迫逐之患, 汝安能出鼠嚙投石之奇乎? 汝因困而成智, 臨變而出奇. 心源一開, 不復更迷. 汝當獨步天下矣.” 後果爲天下難當賊.(下略) - 강희맹(姜希孟,1424~1483),「훈자오설(訓子五說)ㆍ도자설(盜子說)」,『사숙재집(私淑齋集) 』권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