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이자 학자인 고봉(高峯) 기대승의 『논사록』에 나오는 말이다. 마침 어떤 일로 인해 간언을 올린 사간원 관원에게 선조가 “실제가 없는 말을 전하니, 미쳤다고 하겠다.”는 말을 하며 배척하자, 고봉이 경계한 것이다.
『논사록』은 고봉이 경연(經筵)에서 강의한 내용을 모은 책이다. 스승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사단칠정설(四端七情說)에 영향을 줄 정도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임금을 계도하는 일에도 남다른 능력을 보였던 모양이다. 그가 죽자, 선조는 곧바로 그가 평소 경연에서 논했던 말들을 모아 책으로 엮게 하였다. 선조가 그의 정밀하고 박학한 의론에 얼마나 깊이 경도되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흔히 통틀어서 간신이라고 말하지만, 한(漢)나라의 석학인 유향(劉向)은 이를 여섯 가지 사악한 신하로 분류하고 있다.
그저 눈치를 살피며 자리나 지키는 구신(具臣), 군주의 언행에 대해서 한없이 칭찬하며 비위를 맞추는 유신(諛臣), 어진 이를 질투하여 등용을 방해하고 상벌(賞罰)이 교란되게 만드는 간신(姦臣), 교묘한 말재주로 본질을 흐리고 남을 이간질하는 참신(讒臣), 자신의 이익과 권세만을 추구하는 적신(賊臣), 붕당을 지어 임금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뒤로는 임금을 욕하고 다니는 망국신(亡國臣)
면면을 보면 이런 부류의 간신이 한 명만 득세하더라도, 작게는 임금, 크게는 그 나라를 망치고도 남을 만하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조정에 이런 간신들이 득세하였던 것은 아니다. 악인은 어느 시대에도 있었다. 그런데도 간신이 발호한 시대가 있고 그렇지 않은 시대가 있었다. 왜 그렇겠는가? 소인배와 간신배가 득세할 수 있는 환경을 임금이 제공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달랐기 때문이다.
『맹자(孟子)』에,
“위에서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아래에서는 반드시 그보다 더 심한 바가 있다.[上有好者 下必有甚焉者]”
고 하였다. 어느 조정이든 아랫사람은 절대 권력을 가진 사람의 성향을 따르게 마련이다. 절대 권력자의 눈에 들지 않으면 어지간해서는 그 조직 내에서 포부를 펼 수 없다. 아니, 포부는 고사하고 버티기조차 힘들다. 오죽하면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을까?
“오나라 왕이 검객을 좋아하면 백성들은 칼에 베인 상처가 많고[吳王好劍客 百姓多瘡瘢], 초나라 왕이 호리호리한 허리를 좋아하면 궁중에는 굶어 죽는여자가 많다. [楚王好細腰 宮中多餓死]”
그러므로 윗자리에 있는 사람은 호오(好惡)를 드러내는 것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어리석은 임금이 좋은 말을 싫어하고 아첨하는 말을 좋아하면, 자연히 신하들은 아첨하는 간신배가 될 수밖에 없다. 애초에 그런 싹이 자라지 못하도록 엄하게 막는다면, 내면에 간신의 마음을 품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디로 비집고 나오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습관적으로 잘못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는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원인은 자신에게 있는 경우가 많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을 것이요[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을 것이다[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
공자(孔子)는 이 동요(童謠)를 들으면서 말했다.
“물이 맑으면 숭상하는 갓끈이 들어오고, 흐리면 천시하는 발이 들어온다. 모든 것은 스스로 초래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