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는 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림의 화제(畵題)나 묘지명, 건물의 주련이나 시판(詩板), 술병과 잔 등등 시가 없는 곳이 없다. 전통 시대는 가히 시국(詩國)이라 할 만하다. 목판이나 필사된 한시를 읽는 것은 서체 감상과 함께 상상력을 펼칠 수 있어 좋고 그림에 적힌 화제는 그림이 창조한 미적 세계와 함께하여 한결 운치가 풍부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을 위시한 여러 공사립 박물관에 가면 전통 시대의 그림과 도자기를 감상할 수 있는데, 산수화뿐만 아니라 도자기 역시 시정(詩情)을 가득 머금고 있어 경이로운 매력으로 다가온다. 추상적인 듯하면서도 구체적인 외모가 우선 사랑스럽고 품격 있는 색감과 사람의 살결 같은 질감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을 대하는 듯하고 시문(施文)한 도안이나 글씨에서 은은히 풍기는 아취는 가만히 바라보기만 해도 시름을 녹여주는 듯하다. 사람의 거칠어진 마음을 위무해 주는 부드러운 힘이 있다.
이 시는 백자 접시에 청화 안료를 사용해 행초서로 써 놓았는데, 한 해를 보내는 이즈음에 어울리는 시라 소개하였다. 이 시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 알 길이 없다. 술을 좋아한 도연명과 이백도 이제 모두 고인이 되었듯이 인생사는 허무하다. 젊은 시절의 사랑과 야망은 한바탕 꿈만 같고 세상일은 술에 취한 것 같아 내 마음과 맞지 않는다. 그러니 한 잔 술로 시름을 달래고 마음을 서로 위로하자는 내용이다. 은유로 표백한 마음이 고상하다.
만감이 교차하는 세모에 다정한 벗들과 한 잔 술을 기울일 때 음미하기에 좋은 시이다. 옛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마음이 다를 게 없다.
넘실넘실 동쪽으로 흘러가는 장강 물결이여 滾滾長江東逝水 그 물보라로 영웅들을 모두 씻어갔네 浪花淘盡英雄 시비 성패 돌아보면 허무한 것 是非成敗轉頭空 청산은 예나 다름없건만 靑山依舊在 몇 번이나 저녁노을 붉었던가 幾度夕陽紅
삼국지 첫 장에 나오는 서시와 그 의경(意境)이 매우 유사하다. 이 시의 저자가 도연명과 이백의 무덤에 가봤는지 모르겠는데 실제로 도연명의 무덤이 있는 여산 자락에는 대나무가 많고 이번에 마안산시(馬鞍山市) 청산(靑山)에 있는 이백묘에 가 보니 봄날이면 주변에 들꽃이 만발하여 꽃동네[花市]를 이룰 것 같았다. 첫 구에 도령이라 쓴 것은 도연명이 팽택령(彭澤令)을 지냈기 때문이다. ‘도두(到頭)’라는 말은 ‘결국에는’ 이런 뜻인데 삼국지 서시에 나오는 ‘전두(轉頭)’와 통하는 말이다. 생을 긴 안목에서 돌아보고 상처와 좌절로 갈라진 여러 갈래의 마음을 관조(觀照)로 다스리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이번에 중국에 가서 저주(滁洲)에서 취옹정(醉翁亭)과 풍락정(豐樂亭)을 보고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식당에서 도자기로 만든 물 잔이 나왔는데 거기에 마침 이 계절에 알맞은 시가 적혀 있었다. 백거이가 유우석에게 보낸 시이다.
새로 담근 술 잘 익어 거품 일고 綠螘新醅酒 작은 화로는 빨갛게 달아오르네 紅泥小火爐 저물녘 눈이라도 올 것 같은데 晚來天欲雪 술 한 잔 할 수 있겠는지? 能飮一杯無 -「유우석에게 안부를 물으며[問劉十九] 」
좋은 술과 안주를 준비했다 말하고 이어 눈이 쏟아질 것 같은 저녁, 같이 한 잔하고 싶은데 의향이 있느냐고 묻는 내용이다. 이 술집에는 이 시에 적힌 대로 작은 화로를 준비해 안주를 데우는 것이 특색이다. 주점 이름은 ‘홍니(虹泥)’라고 글자를 바꾸었지만, 이 시의 기분을 잘 살리고 있어 반가웠다.
지금까지 내가 본 도자기에 적힌 시들은 이백의 「행로난(行路難)」이나 백거이의 「하처난망주(何處難忘酒)」 처럼 사대부들에게 익숙하고 술을 권하는 시들이 주로 많았다. 그러나 술과는 무관한 교훈적인 것들도 있는데 이는 연적과 필통 같은 문구류나 묘지석 같은 것들과 비교된다.
말을 삼가지만 토하고 삼킬 줄 알며 守口能呑吐 시의에 따라 청탁을 따지지 않네 隨時任濁淸 비어 있는 속은 외물을 포용할 수 있고 中虛足容物 흰 바탕은 자연히 이루어진 것을 알겠네 質白見天成 -「술에 취하여 병에 쓰다[醉書甁面] 」
이 시는 원래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가 성중임(成重任)의 운(韻)을 받아 취하여 술병에 쓴 시인데 이화여대 박물관에 있는 백자에는 첫 구의 ‘탄(呑)’ 자가 ‘천(天)’ 자로 되어 있어 문리가 잘 안 통한다. 호림박물관에 나비가 그려진 8각 연적에 ‘두 구멍으로 번갈아 푸른 파도를 삼키고 토하네[呑吐淸波兩穴回]’라고 한 구절이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탄’ 자가 맞을 듯한데 암기해서 기억에 의존해 쓰다 생긴 일일 듯하다.
맨 앞에 소개한 백자 접시에 적힌 시대로 술하면 도연명과 이백일 듯한데, 이번에 선성(宣城)의 경정산(敬亭山)에 가 보고는 그들의 술에 깊은 고독과 슬픔이 배어있음을 새삼 알게 되었다.
뭇 새들은 높이 날아 사라지고 衆鳥高飛盡 한 조각 외로운 구름 홀로 떠가네 孤雲獨去閑 서로 마주 보아 싫지 않은 것은 相看兩不厭 다만 경정산 너 뿐이로구나 只有敬亭山 -「홀로 경정산에 앉아[獨坐敬亭山]」
이 시를 나는 통상 현실에 좌절하여 외로움을 느낀 이백의 심상을 노래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경정산에서 내려오다 보니 옥진공주(玉眞公主)의 조각상이 있고 무덤 옆에 비문이 있었다. 그 내용을 읽어보니 놀랍게도 두 사람이 특별한 관계였다. 옥진공주는 당 현종의 친 누이동생으로 13세 정도에 도교에 입문하여 젊고 재능이 풍부한 도우(道友) 이백을 아껴 현종에게 천거하였던 것이다. 뒤에 이백이 벼슬에서 쫓겨나자 옥진공주도 공주의 호칭과 벼슬을 다 내던지고 경정산에 은거하여 생을 마친다. 이백이 총 7번 경정산에 왔다고 하는데 이 시는 이백이 죽기 9년 전인 53세에 경정산에 와서 지은 시이다. 이 시에 보이는 깊은 상실감과 고독감, 그리고 경정산에 대한 특별한 마음이 옥진공주를 그리워하는 이백의 마음이라 생각하니 시가 보다 깊이 이해된다.
시라는 것이 대개 상황과 얽힌 사연은 다 사라지고 뼈만 남아 있는 것이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이와 같다. 취옹 구양수와 시선 이백을 찾아가는 여행을 시종 술과 함께 하다 보니 글도 술에 취한 것 같다. 그러나 연말에는 좀 취하는 게 제격일 것 같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