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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 보기를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4. 1. 9. 16:02

- 이백스물일곱 번째 이야기
2014년 1월 2일 (목)
백성 보기를
아픈 데를 보듯 하면 반드시 편안하게 해 줄 방도를 생각하게 되고,
어린 아기를 보호하듯 하면 또 양육할 방도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如傷則必思所以安之之道  如保則又思所以養之之道
여상즉필사소이안지지도  여보즉우사소이양지지도

- 정조 (正祖, 1752~1800)
 「새해 초에 중외의 모든 신하들에게 신칙하여 유시하는 하교[무술년(1778)]」
 『홍재전서(弘齋全書)』제30권

 

  
  조선 제22대 왕인 정조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학술연구를 비롯하여 각종 기록물과 소설, 심지어 여러 차례 방영된 드라마 등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졌으니 여기에서 새삼 소개를 덧붙일 것도 없겠습니다만, 정조 자신이 뛰어난 학자이자 문인이었다는 사실은 그동안 별로 조명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학자이자 문인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정조의 문집이 바로 『홍재전서(弘齋全書)』입니다. 위의 글은 정조가 왕위에 오른 뒤 두 번째 해를 맞이하면서 발표한 새해맞이 대국민 연설에 나온 구절입니다. 『홍재전서』에 실린 전문을 발췌하여 소개합니다.

  과인은 어렵고도 큰 왕업을 이어받아 밤낮없이 삼가 두려워하여 편안히 지낼 겨를이 없었다.……나는 오직 즉위한 지 얼마 안 되는 입장에서 여러 신하와 나랏일을 의논하여 스스로 책임을 지려 하는데, 선조의 가르침을 이어받으려는 노력이 독실하지 못하여 면목을 일신하는 아름다움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풍속이 어그러져 인재가 일어나지 않고 기강이 무너져 재용이 바닥나고 따라서 역적들이 층층이 생겨나 나라의 형세가 안정되지 않고 있으니, 오늘날의 시대상을 옛날과 비교해 보면 어떤 때와 같겠는가. 과인이야 착하지 못하여 큰일을 해내기에 부족하다 하더라도, 그대들 여러 군자는 어찌 감히 각각 그대들의 지위와 직분을 공경히 수행하여 나 한 사람을 받들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서경(書經)』에, 백성들을 내 몸 아픈 데 보듯 하라고 하였고, 또 어린 아기를 보호하듯 하라고 하였다. 아픈 데를 보듯 하고 어린 아기를 보호하듯 하라는 것이 어찌 한갓 그렇게만 하라는 것이겠는가. 아픈 데를 보듯 하면 반드시 편안하게 해 줄 방도를 생각하게 되고, 어린 아기를 보호하듯 하면 또 양육할 방도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편안하게 해 주고 양육하는 데에는 방도가 있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기를, “항산(恒産)이 있으면 항심(恒心)이 있다.”고 하셨으니, 그 산업을 넉넉하게 해 주고 그 재산을 여유 있게 해 주는 것은 물품을 하사해 주는 것으로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나의 온 나라 안 백성이 농상(農桑)을 부지런히 하니, 요역(徭役)과 부세(賦稅)를 가볍게 매겨 위로는 부모를 섬기고 아래로는 처자(妻子)를 부양하여 절박한 고통이 없고 편안히 삶을 영위하는 즐거움을 지니게 된다면, 백성의 산업은 풍족하게 하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풍족하게 되고 백성의 마음은 안정시키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안정될 것이다. 그러나 산업을 넉넉하게 하고 재산을 여유 있게 하는 방도는 내가 홀로 위에서 운영할 수 없다. 진실로 나의 근심을 나누어 받은 신하들이 어떻게 왕명을 펴 나가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아, 백성들이 이미 편안하고 또 잘 양육된다면 의식(衣食)을 풍족하게 하여 예절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니, 풍속이 어그러지고 인재가 일어나지 않는 것에 대해 우려할 것이 뭐 있겠으며, 기강이 무너지고 재용이 바닥나는 것에 대해 근심할 것이 뭐 있겠는가. 또 역적들이 층층이 생겨 나라의 형세가 안정되지 않는 데 대해 우려할 것이 뭐 있겠는가. 아, 과인이 착하지 못하여 정사가 백성들을 감싸 길러 주기에 부족하고 말이 신하들을 감동시키기에 부족하다. 그런데도 이렇게 열 줄 윤음으로 간곡히 알리니, 실로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안으로 삼정승과 백관(百官), 밖으로 방백과 수령은 나의 말을 잘 듣고 나의 마음을 체득하여 나의 일국 신서(臣庶)들로 하여금 함께 양춘(陽春)의 은택을 입어 가난으로 인한 근심을 갖지 않도록 하라. 그러면 과인의 다행이 될 뿐만 아니라 실로 종묘사직과 생령(生靈)들의 다행이 될 것이다. 힘쓰고 힘쓰라.
                                                                         
(김경희 번역)

  내가 즉위한 지 얼마 안 되어 나랏일을 이끌어 가는데, 노력이 부족하여 사회도 혼란스럽고 재정도 넉넉지 않아 나라가 안정되지 않으니 걱정이다. 내 능력도 부족하지만 여러 신하들은 왜 자신들의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가? 백성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생각하고 어린 아기 보호하듯 하라. 말뿐이 아닌 보다 실질적인 방도를 내 놓아서 산업이 잘 돌아가고 세금 부담을 줄여 주어 살림이 넉넉하게 된다면 나라는 저절로 안정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여러 신하들이 어떻게 그 일을 추진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나의 말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니 여러 신하들은 새겨듣고 힘쓰도록 하라는 취지의 말씀입니다.

   이 글을 찬찬히 읽어 보면 조선 시대나 지금 이 시대나 결국 사람 사는 이치는 한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백성들이 마음 편하고 배부르게 되면 그밖에 모든 나랏일이 절로 다 이루어질 것이니 백성들의 삶을 안정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라. 정조의 나라 사랑, 백성 사랑하는 마음이 잘 드러나는 연두교서라 하겠습니다. 이제 희망의 2014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리 정치인들도 부디 정조 임금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백성을 마치 내 아기처럼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살펴서, 백성들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봅니다.

 

글쓴이 : 조경구(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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