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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꾸눈 닭의 병아리 키우는 법 - 자녀 교육, 어떻게 해야 하나?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4. 4. 9. 17:05
- 삼백열일곱 번째 이야기

2014년 4월 14일 (월)

  애꾸눈 닭의 병아리 키우는 법

        - 자녀 교육,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나라에는 다른 나라에서 감히 따라오지 못하는, 아니 아예 범접조차 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자녀에 대한 교육 열풍이다. 이젠 열풍을 넘어서 아예 광풍이라 할 정도이다. 이 세계에서 학교 교육이 우리나라처럼 제도적으로 완비된 나라도 드물다. 깊은 산골 마을이나 외진 섬마을까지도 학생 몇 명만 있으면 그 학생을 가르치기 위한 분교가 있다. 초등학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까지도 그렇다. 이젠 각 군마다 거의 대학이 하나씩 있다. 학교의 숫자는 물론 진학률에 있어서도 다른 나라가 감히 범접조차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렇게 완비된 학교 교육도 학원 등을 중심으로 한 사교육에 비하면 조족지혈, 새 발의 피다. 집 앞을 나가 보면 예체능계 학원은 물론, 종합학원이니 보습학원이니 논술학원이니 하는 각종 학원이 즐비하다. 이런 학원에서 밤늦은 시간까지 학생들이 피곤에 지친 상태로 공부를 한다. 자신이 좋아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공부다. 그리고 학생들만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 그 학생의 부모들까지 시달린다. 학원비에 시달리고 데려다 주고 데려오고 하는 데에 시달린다.

이렇게 모든 학생과 학부모들이 교육에 몰두하면서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면 그에 대한 대가가 있어야만 한다. 개개인으로 보면, 공부를 하느라 자신의 청춘을 모두 바치고, 뒷바라지하느라 자신의 삶을 희생한 사람들이 모두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 또 사회적으로 보면, 재주 있고 능력 있는 인재가 쏟아져 나와 이 사회에 기여할 수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 기업에서는 직원을 채용하면서 쓸 만한 인재가 없다고 한탄을 한다. 투자에 비해 성과는 없는, 한마디로 실패인 것이다.

암탉이 둥지에서 알을 품고 있는데 한쪽 눈이 멀었다. 오른쪽은 눈동자가 완전히 멀었고, 왼쪽 눈은 겨우 눈을 뜨고 있는 정도였다. 이에 낟알이 그릇에 가득 차 있지 않으면 쪼아 먹지 못하였고, 나다니다가 담장에 부딪히면 이리저리 오가면서 겨우 피해 갔다. 그러자 모두들 이 닭은 병아리를 기를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날짜가 차서 병아리가 깨어 나왔기에, 그 병아리를 빼앗아 다른 닭에게 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가엾어서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얼마 지나서 살펴보니, 그 닭은 특별히 달리 하는 일이 없었으며, 항상 섬돌과 뜰 사이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도 병아리는 어느새 쑥쑥 자라나 있었다. 다른 닭들을 보니 대부분 병아리가 죽거나 잃어버려서 혹 반도 채 남아있지 않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이 애꾸눈 닭만은 온전하게 둥지를 건사하였다. 이것은 어째서인가?
무릇 세상에서 병아리를 잘 기른다고 하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먹이를 잘 구해 주고 환란을 잘 막아주는 것이다. 먹이를 잘 구해 주려면 건강해야 하고, 환란을 잘 막아주려면 사나워야 한다. 병아리가 부화한 뒤에는 어미 닭은 흙을 파헤쳐 벌레를 잡느라 부리와 발톱이 닳아서 뭉툭해지며, 정신없이 사방으로 나다니느라 편안하게 쉴 새가 없다. 그리고 위로는 까마귀와 솔개를 살피고 옆으로는 고양이와 개를 감시하면서, 부리로 쪼아대고 날개를 퍼덕이면서 죽을힘을 다해 싸운다. 그 모습을 보면 참으로 병아리를 잘 키우는 방도를 분명하게 터득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숲 덤불을 분주하게 다니면서 때가 되면 불러들이는데, 병아리들은 삐악삐악하며 졸졸 따라다니느라 힘은 다 빠지고 몸은 병들어 간다. 그러다가 혹 잘못하여 병아리를 물이나 불 속에 빠뜨리기도 한다. 이런 재앙이 갑자기 닥치면, 먹이를 잘 구하는 재주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리고 조심스레 보호하면서 방어하여 싸우기를 타오르는 불길과 같이 사납게 한다. 그러나 환란이 한번 휩쓸고 지나간 뒤에 보면 병아리들이 열에 예닐곱은 죽어있다. 또 멀리 나가 돌아다닐 경우에는 사람이 보호해 줄 수가 없어서, 사나운 맹수들의 밥이 되고 만다. 그럴 경우 환란을 잘 막는 재주 역시 아무 소용이 없다.
저 애꾸눈 닭은 일체를 모두 이와는 반대로 하였다. 나다닐 때에는 멀리 갈 수가 없으므로 항상 사람 가까이에 있으면서 사람에게 의지한다. 또 눈이 애꾸라서 제대로 살필 수가 없으므로, 항상 두려움을 품고 있다. 이에 그저 느릿느릿 움직이면서 병아리들을 자주 감싸주기만 할 뿐, 특별히 애를 쓰지 않는다. 그런데도 병아리들은 제 스스로 먹이를 쪼아 먹으면서 제 스스로 잘 자랐다.
무릇 어린 새끼를 기를 때에는 작은 생선 삶듯이 조심스럽게 해야 하며, 절대로 들쑤셔서는 안 된다. 저 애꾸눈 닭은 이러한 지혜가 없는데도 기르는 방법을 제대로 잘 써서 결국 병아리들을 온전하게 길러냈다. 병아리들을 잘 기른 까닭은 여기에 있는 것이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여기에서 비로소 사물을 잘 기르는 방도가 비단 먹이를 먹여주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적당히 보살피면서 각각의 사물들로 하여금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게 해 주는 데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또 그렇게 하는 요체는 잘 거느리면서 잊어버리지 않는 데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애꾸눈 닭이 병아리를 기르는 것으로 인해서 자식을 잘 기르는 방도를 터득한 것이다.

有伏雌在窠而瞎。右睛全翳。左通微睇。穀不滿器。不能啄。行觸垣牆。彷徨以回避。皆曰是不可以有乳矣。及日滿雛成。將奪而與佗。又憐而不忍也。
旣而視之。無佗技能。常不離於階庭之際。而雛便茁壯長焉。觀佗乳者擧不免摧殘損失。或不能半存。而此獨有完巢之功何哉。
凡世所謂善乳者有二。善求食也。善防患也。求食尙健。防患尙猛。雛旣出殼。母能撥土揀蟄。嘴爪爲之磨鈍。規規四出。時無安息矣。仰察烏鳶。傍伺猫犬。厲吻鼓翅。拚棄死命。誠若快利得其路。
然奔走林莽。及時呼引。而雛也啼號跟隨。力則竭。體則病。或至於違失而水火是蹈。患殃猝逼。此求食無益也。其愼護禦鬬。猛若烈火。然患已去而雛亦爲之六七分摧敗。旣又遠出。人亦失護。鷙物之勇。有以勝之。此防患無益也。
彼瞎者一皆反之。行不能遠。故依止近人。目不能察。故常懷畏懼。動息徐徐。抱覆頻頻。不見用力之迹。雛自啄拾而成矣。
夫養雛若烹小鮮。惟忌攪亂。彼非智有以及之。而適中方便。畢竟萬全者。在此不在彼。
始知物之養成。不但在於哺鷇之恩。卽帥之有術。而各遂其生。其要在善御而不忘而已也。余於是因養雞而得養人之道。

- 이익(李瀷, 1543~1620), 「애꾸눈 닭의 이야기[瞎雞傳]」, 『성호집(星湖集)』


▶변상벽(卞相璧)의 계자도(鷄子圖) 부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리그림백가지』에서 인용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인 성호(星湖) 이익(李瀷)이, 애꾸눈을 가진 닭이 온전한 닭들보다 병아리를 더 잘 키우는 것을 보고 지은 글이다. 성호는 젊은 시절에 그의 형이 당쟁에 휩쓸려서 처형당하는 것을 보고는 벼슬에 뜻을 버리고 경기도 안산으로 낙향하여 학문에만 몰두해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의 학문은 이후 안정복(安鼎福)ㆍ정약용(丁若鏞) 등으로 계승되어, 우리나라의 학문 및 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글에서 성호는 “어린 새끼를 기를 때에는 작은 생선 삶듯이 조심스럽게 해야 하며, 절대로 들쑤셔서 다 문드러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이 말은 노자(老子)가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말하면서 “큰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마치 작은 생선을 삶듯이 해야 한다.[治大國者 若烹小鮮]”라고 한 말에서 따온 것이다. 노자의 이 말은 자녀교육의 방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자녀가 나름대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기만 해야지, 일일이 간섭하면서 직접 밥을 떠먹여 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들은 흔히 자녀 교육의 방법을 말하면서는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의 교육을 위하여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이야기와 한석봉 어머니가 깜깜한 밤중에 불을 꺼놓고 떡을 썬 이야기를 한다. 오늘날 우리 학부모들이 자녀 교육에 쏟는 열정은 맹자의 어머니나 한석봉의 어머니보다 훨씬 더하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는 맹자와 같은 큰 사람이나 한석봉과 같이 뛰어난 인재가 없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을까?

맹자의 어머니와 한석봉의 어머니는 오늘날의 우리 학부모들과는 달랐다. 맹자의 어머니는 맹자가 잘 배울 수 있는 환경만 조성해 주었을 뿐이고, 한석봉의 어머니는 한석봉에게 동기만을 유발시켜 주었을 뿐이다. 말을 자연스럽게 물가로 끌고 가기만 하고 억지로 물을 먹게 하지는 않은 것이며, 물고기를 직접 잡아서 주지 않고 물고기 잡는 방법만을 알려준 것이다. 이 때문에 맹자는 맹자가 될 수 있었고 한석봉은 한석봉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비해 오늘날의 우리 학부모들은 어떤가? 말을 억지로 물가에 끌고 가서 억지로 물을 먹게 하고,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직접 잡아서 먹여주고 있다. 이 때문에 맹자가 나오지 못하고 한석봉이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그저 창의력이라고는 하나 없는, 시험만 잘 치는 학생만 있게 된 것이다.

옹그라져 잘 자라지 못한 네가 마음 아파,
나의 벗이 널 캐다가 뜰 앞에다 심었구나.
너는 이제 삼천 자나 반듯하고 곧게 자라,
큰 궁궐의 기둥 되어 억만년을 버틸 거리.

너는 이제 사람 손에 의지해서 크지 말고,
서리와 눈 맞으면서 하늘 높이 잘 자라라.
그리하면 곧은 줄기 구름과 해 찌를 거며,
서린 뿌리 구천까지 닿는 것을 볼 것이리.

憐爾龍鍾不自伸
喜君摩拂植庭前
行看正直三千尺
撐柱明堂億萬年

與爾煦濡仰若人
何如霜雪任高天
方看擢幹干雲日
遂有盤根到九泉

조선 시대의 큰 학자로 주자(朱子)의 학설까지도 비판한 백호(白湖) 윤휴(尹鑴)가, 어린 시절 그의 이웃에 살던 친구가 뜰 앞에 소나무를 캐다가 심은 것을 보고 읊은 시이다. 백호의 이 시에는 부모가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들어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것은 나쁜 환경 속에서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소나무를 캐다가 잘 자라날 수 있는 곳으로 옮겨 심어주듯이 해야 한다. 자녀로 하여금 곧고 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생선을 삶으면서 이리저리 들쑤시듯이 해서는 안 된다. 그저 자녀가 자기 나름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적당히 보살펴 주기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 아이가 서리와 눈을 이겨내고 천길 높이 우뚝 자란 소나무처럼, 가끔은 방황과 시련을 겪을지라도 마침내는 큰 인물로 자라나게 될 것이다.



정선용 글쓴이 : 정선용
  •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 주요저역서
    - 『외로운 밤 찬 서재서 당신 그리오』, 일빛, 2011
    -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해동역사』, 『잠곡유고』, 『학봉집』, 『청음집』, 『우복집』, 『삼탄집』,『동명집』 등 17종 70여 책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