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삼백열여덟 번째 이야기 |
|
역사의 이면에
숨은 희생자 |
고려 말을 무대로 하는 사극(史劇)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비중 있는 한 등장인물의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가 극 초반의 바람몰이에 크게 도움을 주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가 이인임(李仁任)이다. 그동안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인물이었고, 기존 역사 기록에서 대표적인 간신으로 묘사되고 있던 그였기에, 드라마로 인해 한 인물이 새롭게 태어났다고 할
만하다.
그에 관한 내용이 사실일까?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역사의 왜곡을 우려하지만, 기왕의 역사서
자체가 왜곡된 것일 수 있다. 역사는 어차피 승자의 기록이다. 붓을 쥔 사람의 시각에서 기술하게 마련이다. 우리는 그저 사관이 그나마 양심껏
남겨놓은 행간의 장치를 읽을 수 있으면 그만일 것이다. |
평상시에
역사를 읽노라면 매번 선한 사람은 지나치게 선하고, 악한 사람은 지나치게 악한 것이 의아하게 여겨졌는데, 그 당시에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사를 지을 때 비록 권선징악(勸善懲惡)이라는 지고한 의도로 인해 그런 것이겠지만, 요즘 사람이 공평한 마음으로 보면 선하다고 하는
것이야 본래 마땅하다고 하더라도 저 악의 경우에는 어찌 그리도 지독한가? 사실 선한 사람에게도 악한 면이 있고, 악한 사람에게도 선한
면이 있는 법이다. 당시 사람이 실로 시비(是非)에 어두운 바가 있었기 때문에, 그 버리고 취할 때 자세히 살피지 못하여 비웃음을 사고 죄를
짓게 되는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 역사를 읽을 때는 이런 뜻을 알지 않아서는 안 된다.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진(晉)나라 영공(靈公)이 신하인 조돈(趙盾)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이는 그의 세력이 대단히 강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허다한 이야기들은 본래 훗날 삼진(三晉)1)이
정권을 잡은 뒤에 그런 사실을 날조하여 덮은 것이다.”
라고 하고, 또
“이를테면 당(唐)나라 태종(太宗)이 형제인 건성(建成)과
원길(元吉)을 살해한 경우도 그렇다. 일으킨 화가 그처럼 심각하였는데도, 아비 된 자가 어찌 그처럼 태연히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해지(海池)에
배를 띄워 놀 수가 있었겠는가? 형을 죽이고 아비를 위협하여 임금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이 분명하니, ‘내일 마땅히 일찍 참석해야 할
것이다.’2)라는 말은 모두 역사가가 윤색(潤色)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주량(朱梁)3)이 오래지 않아 멸망하였는데,
아무도 그를 위해 덮어주지 않았으므로, 모든 악이 다 드러났다. 만약 조금 더 오래 지속되었더라면 반드시 그중 반쯤은 덮을 수 있었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것은 모두 군자가 시비의 진실을 본 것으로, 취하여 본받을
만하다. 자공(子貢)이 이르기를,
“주(紂) 임금의 악행이 이처럼 심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모든 악행이
그에게로 몰렸다.”4)
라고 하였다. 주량(朱梁)과 같은 경우에는 그 악이 각각 반드시 이처럼 크지는
않았을 것이니, 아마도 생각마다 일마다 이처럼 극악하면서 천하를 차지할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다. 선(善)한 사람의 경우도 그렇다.
이를테면 『송조명신록(宋朝名臣錄)』에 실린 각각의 인현(仁賢)들은 『어류(語類)』에서 논한 것을 근거로 삼은 것일 뿐이니, 그들이라고 어찌
결점이 없이 한결같이 깨끗하기만 하였겠는가?
1)삼진(三晉)
: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때의 조(趙), 한(韓), 위(魏) 3국을 말하는 것으로, 이들은 원래는 진(晉)나라의 대부(大夫)들이었는데,
전국시대 초기에 진나라를 나누어 각각 나라를 세웠다. 2)내일……것이다 : 태종이 부황인 고조(高祖)에게 형인 건성과 아우인 원길이 자신을
제거하려고 한다고 몰래 아뢰었을 때, 놀란 고조가 “내일 국문을 할 테니, 너는 일찍 참석하여라.”라고 하였던 역사의 기록을
말한다. 3)주량(朱梁) : 중국의 오대(五代) 때의 후량(後梁)을 가리키는 것으로, 주온(朱溫)이 세웠으므로, 주량이라고 한
것이다. 4)주(紂) 임금의……몰렸다 :『논어(論語)』 「자장(子張)」에 나오는 말로, 원래는 “주(紂) 임금의 불선(不善)이 이처럼
심하지는 않았으니, 그래서 군자(君子)는 하류(下流)에 처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천하(天下)의 악행(惡行)이 모두 모여들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常時讀史 每疑善者偏善惡者偏惡 在當時未必然
作史雖因懲惡勸善之至意 今人平地上看 過以爲善者固當 彼惡者 胡此至極 其實善中有惡 惡中有善 當時之人 實有是非之眩 故有去取不審貽譏得罪者也
讀史不可不知此意 朱子曰 晉靈公欲殺趙盾 不得 是他大段强了 今許多說話 自是後來三晉 旣得政 撰造掩覆 如唐太宗殺建成元吉兄弟 構禍如此之極 爲父者
何故恁地恬然無事 泛舟海池 分明是殺兄劫父代位 明當早參之語 皆是史之潤飾 又曰 朱梁不久而滅 無人爲他藏掩得 故諸惡一切發見 若更稍久 必掩得一半
此皆君子看得是非之眞 可以取法也 子貢曰 紂之惡 不如是之甚也 衆惡歸焉 如朱梁者 其惡各未必如此之大 恐未有心心事事 若是之鉅慝 而能得天下者矣 善亦如此
如宋朝名臣錄 箇箇仁賢 據語類所論 何嘗一向潔淨無瑕纇耶
-
이익(李瀷, 1681∼1763), 「고사선악(古事善惡)」, 『성호사설(星湖僿說)』 제20권,
경사문(經史門) |
| |
|
맹자(孟子)가 말했다.
“『서경(書經)』의 내용을 다 믿는다면, 『서경』이 없느니만
못하다.[盡信書 則不如無書]”
유가에서 존숭하는 경서의 내용조차도 다 믿을 수는 없다고 하니, 역사서야
말할 것도 없다.
사실 왕조 말의 역사서를 읽다 보면 정말 형편없는 인간상을 종종 만난다. 그래도 명색이 어렸을 때부터 최고의
스승들에게서 제왕학(帝王學)을 배운 한 나라의 임금이었고, 뛰어난 수재들, 지략가들과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엘리트들이었는데, 정말 그런 한심한
짓을 했을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성호(星湖) 이익(李瀷)은 이런 기록을 다 믿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다. 악인이라는 것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려다보니, 사실을 왜곡하거나 사소한 비행을 과장하여 기술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의 제자인 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
역시 비슷한 취지로 「사서불가신(史書不可信)」이라는 글을 남긴 것을 보면 무리한 추측은 아닌 듯하다.
전통적으로 순(順)은 길한
것이고, 역(逆)은 흉한 것으로 여겼다. 그런 시대에 권력 주체의 변화는 곧 역(逆)이다. 자신이 차지한 권력이 정당하다는 명분을 얻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기존의 것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
한시(漢詩)의 작법(作法)에서, 어느 한쪽의 전공(戰功)을 일방적으로
찬양하기보다는, 반대편의 악행을 누누이 열거한 뒤에 그들을 물리쳐서 백성들이 환호했다고 하는 것이 더 실감 나게 다가오는 것과 같다. 남의
악(惡)이 반드시 나의 선(善)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책의 권위에 익숙해 있는 독자들에게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래서 역사서를 읽을 때는 비판적 안목이 필요하다. 특히 정권이 바뀌거나 왕조가 바뀌는 즈음의 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정권의 경우는 더러 재집권하게 되면 조선조의 『실록(實錄)』과 『수정실록(修正實錄)』의 사례처럼 자신들의 입장을 충실히 변명할 여지가 있었지만,
왕조가 망한 경우는 변명의 여지가 없이 그대로 사실이 되어 버린다.
그래도 거리낌 없는 사관(史官)의 대명사인 동호(董狐)를
이상형으로 삼고, 춘추필법(春秋筆法)에 대해 귀가 닳도록 듣고 자라서인지, 어쩔 수 없이 왜곡을 하면서도 후대의 독자들이 충분히 다르게 짐작할
수 있는 장치를 남기는 경우도 많았다.
정조(正祖)는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악행에 대한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의
기록을 없애게 하면서도, 오려낸 부분은 그대로 두었다. 정말 감쪽같이 역사를 왜곡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임금으로서 얼마든지 표 나지 않게 베껴
만들어 대체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자식으로서 할 수 있는 도리를 다하면서도, 역사를 완전히 은폐하고 싶지 않은 지식인의 고뇌
때문이었을 것이다.
봄꽃에 마음이 한껏 너그러워졌을 때다. 역사책 한 권 잡고서, 억울할 수도 있는 역사 속의 인물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한 번 주어보는 것은 어떨까? |
|
|
글쓴이 : 권경열
-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사업본부장
- 주요역서
-
『국역 오음유고』, 민족문화추진회, 2007 - 『국역 국조상례보편』공역, 국립문화재연구소, 2008 - 『국역 매천집 3』,
한국고전번역원, 2010 - 『국역 가례향의』, 국립중앙도서관, 2011 - 『임장세고』, 한국국학진흥원, 2013 외
다수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