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十六計 勝戰計
第一計
瞞天過海(만천과해)
하늘을 속이고, 바다를 건너다.
...만천과해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먼저 '승전계'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하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다들 알고 있다시피 '승전'이란 '이기는 싸움'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승전'이란 '이기는 것이 당연한'이라는 뜻이다. 요컨대, '당연히 이기는' 싸움이지만,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이 바로 이 '승전계'에 들어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기는' 싸움이란 무엇인가? 바로 아군의 수가 적군의 수를 훨씬 웃도는 상태를 뜻한다.
흔히 '兵法'이라 하면, 소수의 아군으로 다수의 적군을 이기는 '신비한' 술책 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으나, 병법의 기본은 어디까지나 '다수의 아군으로 소수의 적군을 압박하여' 이기는 것이다. 손자병법에서도, 謨攻(모공)편에 이르길, "...그러므로 전쟁의 원칙은 병력이 적군의 10배일 때에는 적을 포위하고, 5배일 때에는 적을 공격하며, 2배일 때에는 계략을 써서 적을 분산시키며, 병력이 적과 비슷할 때에는 전력을 다하여 싸워야 하며, 병력이 적군보다 적을 때에는 적과 부딪치지 말고 싸움터에서 벗어나야 하며, 상황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전투를 피하여야 한다..." 라고 하고 있다.
삼십육계의 구조도 위에 얘기한 손자병법 모공편의 문구에 따라 이루어져 있다. 적보다 우세할 때의 '승전계', 적과 세력이 비슷할 때의 '적전계', 적을 공격하기 위한 '공전계', 공방이 혼란할 때의 '혼전계', 다른 아군과 합세하여 싸울 때의 '병전계', 그리고 아군이 불리할 때의 '패전계' 로 말이다. 흔히 삼십육계에 관한 자료를 보면 '승전계'에 대하여 '아군이 우세할 때의 계략' 정도로만 설명이 되어 있는데, 그 이면에는 위와 같은 뜻이 있음을 알아두기 바란다.
이제 '瞞天過海(만천과해)'에 대하여 살펴보자. '하늘을 속이고, 바다를 건너다' 문구만으로는 쉽게 와닿지 않는 말이다. 예를 살펴보자. 삼십육계에 관한 자료를 찾다보면, '만천과해'의 설명에 삼국지연의의 태사자에 대한 예가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내용은 이렇다. 태사자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의 이야기이다. 공융이 황건적에게 포위되어 있을 때의 일이다. 공융에게 평소 은혜를 입은 태사자의 모친은 공융이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태사자에게 도우러 가라고 한다. 이에 태사자는 밤을 틈타 황건적의 포위망을 지나 공융에게로 간다. 공융은 유비에게 원군을 부탁하고자 하고, 이 임무를 태사자에게 부탁한다. 이에 태사자는 황건적의 포위망을 뚫고자 하나, 적의 포위망이 워낙 튼튼하여 쉽게 돌파하지 못한다.
그러자 태사자는 포위를 뚫을 것처럼 하고서는 과녁을 세워두고 활을 쏘는 연습을 했다. 황건적들은 처음에는 바짝 긴장하였으나 태사자는 활을 몇 발 쏘고는 그냥 돌아가 버렸다. 다음날도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사흘째가 되자 황건적들은 태사자가 나와도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이에 태사자는 말을 채찍질하여 황건적의 포위망을 뚫고 나가 유비에게 구원을 청하게 된다.
(이 예는 삼국지연의에는 나오지 않고, '三國志(正史) 吳志 태사자전'에 나오는 일화이다.)
삼십육계 원문에는 '만천과해'에 대한 짤막한 해설이 붙어 있다.
"아군의 수비가 안전하다고 생각되면 자칫 경계심이 흩어지기 쉽다. 또한 사람은 흔히 보아온 것에 대해서는 의심을 품지 않게 된다. 그러한 약점에 계략을 찔러넣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의 헛점을 찌르는 계략은 대수롭지 않게 눈에 뜨이는 곳에 깃들게 하는 것이다. 꼭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備周則意怠,常見則不疑.陰在陽之內,不在陽之對.太陽,太陰.]"
...간단히 말하자면 위의 태사자와 같이 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적을 방심하게 하고, 그것에 적이 익숙해졌을 때, 그 틈을 찌르는 계략이라는 것이다. 분명히 뜻풀이만으로 보자면 태사자의 예는 적절해 보인다.
하.지.만! '瞞天過海'는 어디까지나 '勝戰計'에 속하는 계략이다.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아군이 '우세할 때' 쓰는 계략이라는 것이다. 태사자가 적의 포위망을 빠져나가는 것을 '승리'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그 이후에 태사자가 유비를 불러와서 관우가 황건적 도당의 두목인 관해의 목을 쳐서 공융이 구원을 받게 되니, 결과적으로는 승리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결과론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히 '태사자가 적의 포위망을 빠져나가는 것' 그 자체로는 결코 '승리'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만천과해'에 태사자의 예를 드는 것은 '적을 방심하게 하고 그 틈을 찌른다'는 점에서는 타당하지만, 그보다 이전의 '승전계'라는 전제를 만족시키지 못하므로 잘못된 예라 할 것이다.
그럼 '만천과해'의 예로는 어떤 것을 들 수 있을까. 위의 태사자의 예처럼 대부분이 부분만을 충족시키는 예가 많아서 적절한 예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어쨌거나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예는 전국시대 초기, 魏文侯(위문후)가 중산국을 정벌하기 위해 元帥(원수)로 삼은 '악양'의 사례이다(열국지 편에서 자세히 얘기할 기회가 있을 테니, 여기에서는 간략하게 보도록 하겠다).
...위나라는 晉(진)나라가 나뉜 삼국(위, 조, 한) 중의 하나이다. 이때 晉의 동쪽에 中山國이라는 작은 나라가 있었다. 이 나라는 진나라에 계속 조공을 바치고 있었는데 진이 삼국으로 나뉜 후로는 어느 나라를 섬겨야 할지 몰라서 아무 곳에도 조공을 바치지 않았다. 중산국의 위치는 서쪽의 조나라와 가깝고 남쪽의 위나라와는 꽤 먼거리에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조나라가 중산국을 차지하면 위나라는 북쪽으로부터 상당한 압력을 받을 것이 뻔했다.
중산국을 치기로 마음먹은 위문후는 누구를 원수로 삼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 때, 책황이 악양을 천거한다. 하지만 다른 신하들은 악양의 아들인 악서가 중산국에서 벼슬을 삼고 있다는 이유로 악양을 원수로 삼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위문후가 악양을 불러 물어보니, 악양은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어찌 公事를 폐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한다. 이에 위문후는 악양을 원수로 삼아 중산국을 치게 한다.
악양의 병법은 탁월하여 중산국의 병사들을 계속 이겨나가, 마침내 중산국의 수도인 중산성을 포위하기에 이른다. 사태가 급박해지자 중산국의 임금인 희굴은 악양의 아들인 악서를 내세워서 '항복하기 위해서는 임금과 신하가 상의할 시간이 필요하니 한달간의 말미를 달라'고 요청한다. 이에 악양이 승낙하자 희굴은 악양이 아들인 악서의 처지를 걱정하여 공격을 미루는 것으로 생각했다. 한달이 지나도 뾰족한 계책이 서지 않자 희굴은 또 악서를 보내 다시 한달의 여유를 얻어낸다. 이렇게 악양은 악서에게 세 달의 여유를 주었다.
그러자 중산국은 물론 위나라의 병사들까지도 '악양은 아들을 걱정하여 중산국을 치지 않을 것이다'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또한 조정에서는 일조에 원수가 된 악양을 시기하는 대신들이 위문후에게 악양을 참소하고 있었다. 그러나 위문후는 악양을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때때로 사자를 보내 악양을 위로하고, 악양이 돌아오면 하사하기 위하여 도성 안에 좋은 집까지 마련해 두었다.
한 편, 악양은 약속한 3개월이 지나도 중산국이 항복을 하지 않자 병사들에게 총공격을 준비하라는 명을 내린다. 이에 병사들은 또다시 한달의 여유를 줄 것이 뻔한데 뭐하러 준비를 하느냐며 불만을 터뜨린다. 그러자 악양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중산국을 치러 온 것은 그 임금이 무도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중산국을 위나라에 영원히 편입시켜야 한다. 우리가 처음에 힘으로 중산성을 함락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었으나, 그렇게 하면 백성들은 상처를 입고 우리를 원망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중산국은 결코 위나라 땅이 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기다려 온 것은 백성들을 구하고 그들을 위나라의 백성으로 삼기 위함인 것이다."
사태가 급해진 중산국에서는 악서를 인질로 삼으려 하나 악양은 오히려 이렇게 말한다.
"너는 참으로 불초한 자식이다. 벼슬을 살면서도 그 나라를 위해 계책을 세우지 못했고, 적과 싸워 이기지도 못했으니 부끄럽지도 않느냐! 또 나라가 망하게 되었으면 목숨을 걸고 임금에게 화평을 청하도록 권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해야 하거늘, 그런 것도 못하고 부끄럽지 않느냐! 너 같은 놈을 살려두느니 차라리 내 손으로 죽여야겠다!"
악양은 이렇게 말하며 스스로 활을 들어 악서를 쏘려 했다. 그러자 악서는 황급히 숨어 들어갔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희굴은 악서를 죽여 그 시체로 국을 끓여 악양에게 보낸다. 악양이 충격을 받은 틈을 타서 공격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악양은 오히려 악서의 머리를 보고 꾸짖으며 국을 다 먹었다. 그러고는 중산국 사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 임금이 국을 보내주어 잘 먹었다. 중산성을 함락하는 즉시 내 너희 임금에게 직접 감사하리라. 너는 임금에게 돌아가 우리 군중에도 국을 끓이는 가마솥이 있음을 알려라!"
이후 악양은 중산국을 완전히 점령한다.
...그렇다고 중산국 임금을 국을 끓여버린 건 아니고, 중산국 임금은 그냥 자살한다.
...뒷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악양이 개선해 돌아오자 위문후는 악양에게 영지와 커다란 상자를 준다. 상자에 보물이 들어있을 것으로 생각한 악양은 그 상자를 열어보고 깜짝 놀란다. 그 상자에는 보물이 아니라 그 동안 대신들이 악양을 참소한 참소문들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이에 악양은 자신이 공을 세운 것은 위문후가 자신을 끝까지 믿어주었기 때문인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후에 위문후에게서 진짜 보물이 도착하고, 악양은 자신의 영지에서 여생을 보내게 된다. 악양이 병권을 두고 영지로 떠나자 그를 천거했던 책황이 위문후에게 묻는다.
"악양이 위대한 장수란 것을 아시면서도 어찌 물러나게 하셨습니까? 그에게 군사를 맡기면 우리나라의 방비는 튼튼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위문후는 미소를 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책황은 궁에서 나오다가 이극을 만나 위문후에게 얘기했던 것을 얘기한다. 이극도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악양은 자기 자식조차도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오. 자기 자식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하물며 타인에게는 어찌 하겠소?"
...이것이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만천과해'에 맞는 예이다. 적으로 하여금 아들을 걱정하여 계속 공격하지 못하는 것처럼 여기게 하고 그 틈을 공격한다. 조금(...) 억지스러운 느낌도 들지만, 이 이상 비슷한 예는 찾기가 힘들었다. '암도진창'의 예를 써도 괜찮을 것 같았지만, 어차피 뒤에 나오게 될 것이므로 동일한 예를 쓰는 것은 피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사례이므로 보다 어울리는 사례가 있거나 다른 의견 있으시면 언제든지 덧글 달아주시기 바란다.
'산적왕'에 소개된 '만천과해'
유감스럽게도 삼십육계는 손자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출처 http://blog.naver.com/bwind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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