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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송구봉]임진왜란을 예언한 성인 1- 율곡과의 인연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06. 7. 26. 16:27
 
동쪽 하늘의 두 별

 지금으로부터 삼백년 하고도 십여년 전, 조선 14대 선조대왕 시절의 이야기예요. 소년장사 김덕령이 한참 씨름판을 휩쓸던 무렵쯤이나 될까요.
 그때 한양에는 신사임당의 아들 이율곡 선생이 대학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어요. 이율곡은 학문은 물론이고, 별자리를 보는 눈이 남달랐어요. 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을 보면서 세상일을 두루 헤아리곤 했지요.
 하늘의 별 가운데는 율곡의 별도 있었어요. 동쪽 하늘 복판에 떠서 북두칠성보다 밝게 빛나는 별이었지요.
 그런데 한 가지 알 수 없는 일이 있었어요. 동쪽 하늘 외진 곳에 숨어서 홀로 그윽하게 빛나는 별의 정체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요. 율곡은 그 별을 볼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저 별도 조선의 인물이 분명한데, 그 임자가 도대체 누굴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조선 천지의 이름난 사람 가운데 그 별의 주인공을 찾을 수 없었어요.
 '숨어 살고 있는 인재가 분명해. 내가 한번 찾아봐야겠어.'
 율곡은 벼르던 끝에 어느 날 그 별의 임자를 찾아 여행을 떠났어요. 나라에 벼슬을 하고 있었지만, 시골 선비처럼 조촐히 차려입은 채로 하인도 없이 말을 타고서 길을 나섰습니다.
 율곡은 별이 방향을 따라서 정처없이 움직였어요. 밤마다 별을 보면서 나아갈 방향을 가늠했지요. 그러기를 여러 날, 율곡은 별빛을 보면서 자신이 찾는 사람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별의 임자는 쉽게 눈에 띄지 않았어요.
 주막집에서 하루를 묵은 이율곡은 여느 날처럼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섰어요. 아직 동이 터오르기 전이라서 사람들이 다니기에는 이른 시각이었지요.
 율곡이 터덜터덜 말걸음을 옮기는데 맞은편에서 한 사람이 소를 타고 오는 게 보였어요. 허름한 베옷에 삿갓을 쓴 모습이 영락없이 촌사람의 행색이었지요.
 '나만큼이나 부지런한 사람이 또 있군.'
 둘의 사이가 가까워졌을 때, 무심코 그 사람을 바라본 율곡은 흠칫했어요. 삿갓 아래에서 무언가 이상한 빛을 본 것 같았어요. 율곡은 말을 멈추고 그 사람에게 말을 걸었어요.
 "저 잠깐 말씀을…"
 그러자 그 사람이 소를 멈추고 삿갓을 들어 율곡을 바라보았어요.
 '아니 이런!'
 놀라운 일이었어요. 그 사람 눈에서 빛이 나오는데 마치 화살이 몸에 와 닿는 것 같았어요. 몸가짐이 무겁기로 소문난 율곡이지만,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칫했지요. 보통사람 같았으면 말에서 툭 떨어졌을 거예요.
 율곡은 한눈에 그가 자신이 찾던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소 탄 사람에게 말을 붙였습니다.
 "실례합니다. 저는 누군가 하면…"
 말이 채 다 나오기도 전에 소 탄 사람이 껄껄 웃으면서 말했어요.
 "허허, 율곡선생 아니십니까? 그렇지 않아도 지금 마중 나오는 길이올시다."
 "아니 어떻게 그걸!"
 "자, 다른 얘기는 뒤에 하고 우리 집으로 가시지요."
 그 사람은 태연히 소머리를 돌려 오던 길로 향했습니다.

 율곡이 소 탄 사람을 따라서 당도한 곳은 산 속에 있는 외딴 초가집이었어요. 기둥을 툭 치면 폭삭 가라앉을 것 같은 초라한 집이었지요.
 방안에 둘이 마주앉자 율곡이 서둘러 입을 열었어요.
 "제가 둔해서 선생을 이제서야 뵙게 되었습니다. 성함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그 사람이 껄껄 웃으며 말했어요.
 "선생이라니요. 보잘것없는 촌사람인 걸요. 저는 송구봉이라고 합니다."
 '송구봉, 송구봉……'
 언제 들어본 듯도 하고 처음 듣는 것 같기도 한 낯선 이름이었어요.
 "이렇게 산 속에서 사는 사연을 듣고 싶습니다."
 "허허, 뭐 사연이랄 것도 없습니다. 그저 번잡한 세상이 싫어서 강산을 벗삼아 세월을 보내고 있지요."
 물론 그 말을 그대로 믿을 이율곡이 아니었지요. 율곡은 한번 그 사람을 떠볼 겸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참으로 태평하게 사시는군요. 그렇지 않아도 요즘 세상이 태평하다고들 합니다만……."
 "태평해 보일수록 위급한 법이지요."
 그 말에 율곡이 무릎을 치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제 뜻과 같습니다. 나라가 태평할수록 위급한 일을 대비해야 하는 법인데 조정에서 말이 통하지를 않습니다."
 "답답한 일입니다. 머지 않아 바다 건너 왜구가 쳐들어올텐데 말입니다."
 그 말에 율곡의 눈이 번쩍 띄었습니다.
 "그러시군요. 저도 그 비슷한 짐작을 하고 있습니다만…."
 "허허, 그러시겠지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걸 모를 지경이었어요. 아침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어느새 밖에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했지요. 그 동안 율곡의 가슴은 내내 쿵쿵 뛰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뜻이 잘 맞는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이었거든요.
 두 사람은 서로 의기가 투합해서 아주 친해졌습니다.
 "앞으로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눕시다."
 "허허, 저 또한 같은 마음이올시다."

    초야에 묻힌 까닭

 그 후로 이율곡과 송구봉은 틈틈이 만나서 세상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주로 율곡이 틈을 내어 구봉을 찾아갔지요. 구봉과 만나고 돌아갈 때마다 율곡의 마음은 뿌듯하게 차올랐습니다.
 거듭 만나다 보니 두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친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격식을 털어버리고 편안한 친구가 되기로 했습니다. 율곡이 먼저 제안을 했습니다.
 "구봉, 우리 이미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으니 서로 말을 트고 지내면 어떻겠소?"
 그러자 송구봉이 너털웃음과 함께 말을 받았습니다.
 "허허, 듣던 중 반가운 말일세그려."
 "암, 좋은 일이고말고."
 한바탕 웃음을 웃고 난 후, 율곡이 정색을 하고 구봉에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이렇게 친구가 된 이상 서로 뭘 숨기겠는가. 산 속에 들어와 사는 사연을 오늘은 좀 말해주게나."
 "그래. 친구 사이에 숨길 일이 뭐 있겠는가."
  송구봉은 옛일을 생각하는 듯 잠시 허공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몸이야. 비천한 종의 피가 흐르고 있단 말일세."
 송구봉의 할아버지는 어엿한 양반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렇질 못했어요. 그는 할아버지가 첩으로 삼은 몸종의 소생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첩의 자손을 '서얼'이라고 해서 크게 차별했어요. 서얼은 벼슬을 못 하는 건 물론이고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도 없었어요. 종이 주인을 부르듯이 '대감마님'이라고 불러야 했지요. 송구봉의 아버지가, 그리고 그 아들인 송구봉이 바로 그런 신세였답니다.
 어린 시절에 송구봉은 아주 영특한 아이였어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 정도였지요. 특히 구봉의 준빛은 유난히 눈빛이 밝고 강해서 어른들도 눈을 마주치면 외면할 정도였습니다.
 구봉의 아버지는 글을 가르쳐봐야 쓸모가 없는 줄 면서도 아들의 고집에 못 이겨 구봉을 서당에 보냈습니다. 양반 도령들 사이에 끼어든 구봉은 단연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지요. 서당 훈장조차도 그의 송곳 같은 질문에 쩔쩔맬 정도였어요.
 그런데 서당에서 함께 공부하는 아이들은 구봉과 어울리기를 꺼려했어요. 뻔히 보고도 못본 척 딴전을 피우기 일쑤였지요. 한동안은 등 뒤에서 소근소근 손가락질을 하더니, 점차 드러내놓고 시비를 걸기 시작했어요.
 하루는 송구봉이 참다못해 눈을 부릅뜨고 도령들에게 소리쳤어요.
 "이 녀석들, 왜 이렇게 나를 따돌리는 거냐?"
 그러자 도령 가운데 하나가 내뱉듯이 말했어요.
 "더러운 종놈의 자식이 감히 큰소리야!"
 그 말에 구봉은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어요. 그 동안 자신이 따돌림을 당한 이유를 환히 깨달았지요. 그는 눈에 불이 일어나는 걸 참을 수가 없었어요.
 구봉은 그 도령의 멱살을 잡아서 마당에 패대기쳤어요. 도령은 개구리처럼 나자빠져서 한참 동안 옴짝달싹 못했습니다.
 구봉은 훈장 앞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자초지종을 말하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런데 훈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 참으로 뜻밖이었어요.
 "쯧, 천한 녀석이 끝내 말썽이군. 서당에 와서 공부하는 것만도 감지덕지할 일이지, 분수도 모르고 이게 웬 행패란 말이냐!"
 그 말에 구봉은 아까보다 더 큰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어요. 그 동안 존경심을 가지고 지성껏 모셔온 스승이 가슴에 못을 박는 말을 하다니요!
무릎을 꿇은 채 말없이 눈물만 떨구던 소년 송구봉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어요.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서당을 떠나갔습니다.
 송구봉은 그날로 부모님과 하직하고 방랑의 길을 떠났어요. 미친 사람처럼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고 다녔지요. 그렇게 수많은 세월을 보내다가 오두막에 자리를 잡고 눌러앉은 것이었어요.
 이야기를 끝낸 송구봉은 이율곡을 건너다보면서 말했습니다.
 "어때, 내 근본을 알고 보니 친구로 지내기로 한 게 후회되지 않는가?"
 율곡이 얼른 손사래를 쳤어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그저 내가 양반이란 게 부끄러울 따름이네. 도대체 양반이 무어고 종은 또 무어란 말인가. 참으로 한심한 일이야."
 율곡은 구봉의 손을 잡고서 다짐하듯 말했습니다.
 "두고 보게. 내가 꼭 자네를 출세시키겠어."
 "허허, 공연한 생각 말게. 자네만 욕을 볼 뿐이야."

     율곡의 아들은 쌀장수?

 율곡이 구봉과 왕래를 한 지 서너 달쯤 됐을 때였어요. 율곡이 미천한 사람과 사귀는 것을 눈치챈 아들이 정색을 하면서 말했습니다.
 "아버님, 아버님처럼 귀하신 분이 어찌 천한 사람과 어울리십니까?"
 "모르는 소리! 구봉 선생은 나보다 훨씬 훌륭한 분이시다."
 "아버님, 남이 알기라도 하면 무슨 망신입니까?"
 "남의 이목이 그리 두렵더란 말이냐. 긴 얘기 할 것 없이 구봉 선생을 한번 만나보거라. 아마 내일 우리집을 찾으실 게다."
 그 말을 들은 율곡의 아들은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어요. 구봉이 찾아오면 망신을 줘서 아버지와 못 만나게 해야겠다고 별렀지요.
 다음날 율곡은 자리를 비키고 아들이 사랑방을 지키고 있는데 밖에서 낯선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왔어요.
 "이리 오너라. 아무도 없느냐?"
 종이 대문을 열자 손님은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며 소리쳤습니다.
 "율곡. 나 구봉일세."
 그러자 율곡의 아들은 마음을 단단히 다잡아 먹고서
 "뉘시라구요?" 하면서 방문을 훌쩍 열어젖혔어요.
 아뿔싸! 송구봉을 보는 순간 율곡의 아들은 그만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어요. 당당한 풍모에 휘황한 눈빛. 그는 그만 자기도 모르게 버선발로 마당에 내려가 절을 하고 말았습니다.
 "어르신, 처음 뵙겠습니다."
 "그래 율곡은 안에 계신가?"
 "잠깐 밖에 나가셨습니다. 올라가서 기다리시지요."
 그러자 구봉이 율곡의 아들을 잠시 바라보고서 엉뚱한 질문을 던졌어요.
 "그래, 요즘 쌀값이 한 섬에 얼마나 가는고?"
 "글쎄요. 잘 모르는 일입니다만…"
 "알았네."
 송구봉은 더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날 구봉이 율곡과 담소를 나누고 돌아간 뒤, 율곡이 아들을 불러서 물었습니다.
 "구봉 선생을 만나 보니 어떻더냐?"
 "그런 분은 처음 봤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버선발로 땅에 내려가 절을 했습니다."
 "그랬을 테지. 그래, 달리 묻는 말씀이 없더냐?"
 "무슨 까닭인지, 쌀값이 얼마냐고 물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아느냐? 그건 네 인품이 쌀장수 할 만큼밖에 안 된다는 뜻이야. 앞으로 사람 보는 눈을 키워야 할게다."
 그 말에 율곡의 아들은 얼굴이 귀밑까지 빨개졌습니다. 좁은 소견을 고치겠다고 다짐했음은 물론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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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불가사의에 답이있다★┼─
글쓴이 : 개벽너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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