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조선조 중기의 문인 석주(石洲) 권필(權필[韋+畢], 1569-1612)이 작은 돌솥에 새긴 명(銘)입니다.
그 돌솥은 여종이 밭을 일구다가 찾아낸 것인데, 흙을 털고 이끼를 긁어낸 다음 모래로 문지르고 물로 씻어내고 하였더니 빛이 나고 말쑥한 것이 제법 사랑스러워서 곁에 두고 차를 끓이거나 약을 달이는 그릇으로 요긴히 쓰게 되었습니다.
돌을 갈고 문지르면서 석주는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솥아 솥아, 애초 돌로 태어난 지는 얼마이며, 장인이 깎아 그릇으로 만들어 인가에서 사용된 지는 또 얼마이며, 땅 속에 묻혀 있으면서 세상에 쓰여지지 못한 것은 또 얼마인가. 이제 오늘 내 것이 되었구나.”
이 명을 지은 것은 1595년으로 임진왜란을 막 겪은 때입니다. 비록 스스로 벼슬길을 접긴 했지만, 나라가 큰 일을 당했는데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 것은 유교 사회의 지식인으로서 매우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석주는 강호(江湖)의 유랑 생활로 한을 달랬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현명한 임금이 자신을 알아보고 유용하게 써 줄 것이라는 기대는 버리지 않았습니다. 우연히 얻은 돌솥에 그러한 작자의 간절한 마음이 새겨진 것입니다.
이로부터 6년 뒤 중국 사신이 왔을 때, 석주는 백의(白衣)로 제술관이 되어 양국의 이름난 문사들 사이에서 문재(文才)를 한껏 발휘하였습니다. 선조(宣祖)는 그의 시를 향안에 두고 음송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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